[인턴코너] 리뷰칼럼(허정윤) - 국제법무학과 숭실평화통일연구원 공동주최 10월 특강 소감문
- 25-11-1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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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무학과 숭실평화통일연구원 공동 주최 특별 강연 소감문
작성자: 허정윤(숭실평화통일연구원 인턴)
지난 10월 29일, 숭실대학교 국제법무학과와 숭실평화통일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특별 강연이 열렸다. 이번 강연에는 유엔인권위원회 위원 신희석 박사가 연사로 참여해 ‘식민지 시기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전쟁범죄’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일본 제국의 식민지 시기 전쟁범죄의 전반적 양상과 그 역사적 배경이 다뤄졌으며, 특히 한국이 겪은 피해와 그에 대한 국제법적·인권적 쟁점을 중심으로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행사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법과 인권, 평화의 관점에서 식민지 지배의 책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제공했다.
일본 제국의 전쟁범죄로 피해를 입은 집단은 한국과 대만 같은 대표적인 식민지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와 중국, 그리고 전쟁 상대국의 서양인들까지 매우 광범위했다. 특이한 점은 일본 국민 중에서도 피해자가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보통 전범의 피해자라고 하면 자국이 아닌 타국을 상정하지만, 일본 내부에서도 자국민이 폭력과 인권 침해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은 당시 일본 제국이 얼마나 전체주의적이고 비이성적인 체제였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외부를 향한 침략국이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국민을 억압하며 폭력의 논리를 일상화한 체제였음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제국의 전쟁범죄로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집단 중 하나는 바로 한국이었다. 1910년 강제 병합 이후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아 민족 말살을 위한 정책을 체계적으로 시행했다.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고 창씨개명을 강요했으며, 조선의 자원과 인력을 일본의 전쟁 수행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켰다. 수많은 한국인 남성들은 ‘징용’이라는 명목으로 일본 본토, 사할린, 남양군도 등지의 군수 공장과 탄광으로 강제 동원되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여성들은 ‘위안부’라는 이름 아래 군 위안소로 끌려가 인간의 존엄을 짓밟혔고, 민간인들은 학살·강제노역·생체실험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번 특강에서는 일본의 이러한 전쟁범죄가 왜 제대로 처벌받지 못했는지를 국제법적 시각에서 조명했다. 일본의 범죄를 단죄할 수 있는 법적 틀로는 일본의 국내법, 피해국의 법, 국제형사법, 인권법, 그리고 도쿄재판소 헌장 등이 있지만, 이들 체계는 상호 충돌하거나 해석상 모순이 많았다. 특히 도쿄재판소 헌장은 ‘침략전쟁’을 주된 범죄로 규정했을 뿐, 식민지 지배 자체를 범죄로 보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인에 대한 강제노동, 위안부, 민간인 학살 등 수많은 반인도적 행위가 법적 심판의 범위를 벗어났다. 이는 단순한 법의 해석 문제가 아니라, 국제법이 식민지 피해를 포용하지 못한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당시 재판에 참여한 연합국 대부분이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식민지 지배를 ‘범죄’로 인정하는 것은 곧 자기모순이었다. 결국 한국의 피해는 “전쟁범죄의 사각지대”로 밀려났다. 또한, 전쟁범죄의 책임 주체를 누구로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정의 실현을 가로막았다. 실제로 범행을 저지른 군인, 명령을 내린 지휘관, 그리고 전쟁을 가능하게 한 최고 권력자인 천황 중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끝내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 특히 천황은 전후 재판 과정에서 ‘국가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고, 전범 수뇌부 상당수가 정치적 거래 속에서 면책되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한국은 사실상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해방 직후 대한민국은 막 독립한 신생국으로, 국제사회에서 피해국으로서의 법적 대표권을 행사할 정부가 부재했다. 그 결과 조선인 피해자들은 도쿄재판의 당사자로 인정받지 못했고, 일본의 식민지배는 단순한 ‘전쟁 전 행위’로 분류되어 재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는 식민지 피해가 국제법의 경계 밖으로 밀려난 역사적 부정의이자, 해방 이후에도 이어진 구조적 침묵의 시작이었다.
결국 일본 제국의 한국에 대한 전쟁범죄는 단지 과거의 폭력으로 끝나지 않았다. 강제동원과 위안부 피해자들은 해방 이후에도 오랫동안 외면당했고,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은 여전히 미흡하다. 시간이 흐르며 피해자들의 증언은 사라져가고, 법적 해결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 일본의 식민지 시기 전쟁범죄를 되돌아보는 일은 단순히 과거의 상처를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다. 국제사회는 더 이상 ‘승자의 정의’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피해자의 정의를 회복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한국 역시 피해자의 기억을 잊지 않고, 법적·도덕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책임 있는 주체로서 앞으로의 역사를 써 내려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