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5.] 북한 사회의 문화적 딜레마 - 백미순 숭실평화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 23-01-1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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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회의 문화적 딜레마
백미순 숭실평화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북한은 ‘2023년 신년경축대공연’으로 새해를 시작했다. 2022년 12월 31일 밤 11시부터 수도 평양의 5월1일경기장에서 진행된 신년경축대공연은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하여 조선로동당과 정부의 지도 간부들과 무력기관 지휘관들이 관람하였다. 또한 당중앙위원회 제8기 6차 전원회의 참가자들과 조선소년단 제9차 대회 참가자들, 평양 시민들도 대공연에 함께 하였다. 북한의 현세대 리더와 차세대 리더가 총집결한 현장이었고, 이는 음악이 선도(先導)하는 북한 사회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평양시 청년 학생들의 야외 국기 게양식과 축포 발사로 시작된 본 공연의 종곡은 <우리의 국기>였다. 2022년 신년경축공연의 종곡이었던 <우리의 국기, 영광을 드립니다 김정은 장군께>와 같이 수령에 대한 충성심과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측면이 강했다. 또한 북한의 중앙텔레비죤은 연일 “각지 인민들은 새해를 맞아 다채롭게 펼쳐진 경축 공연을 통해 수령에 대한 충성의 마음을 감명 깊게 펼쳐 보이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모습과 같이 대규모 정치 행사 및 각종 기념일에 진행되는 공연 내용을 분석해 보면 북한 정권이 음악을 활용해 어떻게 전 국민을 선동하고 있는지 읽을 수 있다.
북한은 그동안 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중심으로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과 유일 영도 체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선전선동에 집중해 왔다. 음악은 이러한 선전선동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지도자의 중요 정책 및 충성심과 근로 의욕을 고취시키는 곡을 만들어 전 국민이 함께 부르도록 유도한다. 김정은 정권은 ‘경제 발전과 핵무력 강화’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 전국적으로 화선식 선전선동을 진행하는데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북한의 음악을 ‘수령형상 음악’이라고 정의 내렸다. 수령형상(首領形像)은 북한의 절대권력자인 수령에 대한 우상화 작업을 말하는데, 수령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불허되고 일방적인 찬양만이 허용된다. 수령형상 음악은 ‘수령형상’을 창조, 계승, 발전해 나가는 데 목표를 둔 것으로 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북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김일성 3대는 의도적으로 음악을 강조해왔다. 특히 김정일은 “나의 첫사랑은 음악이며, 음악을 창작하고 보급하는 것도 하나의 정치”라며 음악 정치를 주창하였다. 김정일 정권에서 본격화된 음악 정치는 김정은 정권에서 악단 정치, 공연 정치로 한층 현대화되는 등 그 활용 폭이 더 넓어지고 있다.
북한은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여 남한 영상 유포자와 시청자에 대해 엄격한 단속을 시행하고 있다. 그 목적은 권력 유지의 방해 요인을 뿌리 뽑기 위함에 있다. 자유로움을 표출하는 한류 문화와 한국식 창법은 수령에 대한 우상화, 신격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인식되어 적극적인 통제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정권의 이러한 문화 통제는 최근 공연을 분석해 볼 때 딜레마(dilemma)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참관하는 각종 공연에도 이미 한류 문화가 깊숙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북한의 예술지인 「조선예술」에 수록된 2012년~2017년 57곡의 북한 수령형상 음악의 음악적 기법 분석을 수행했다. 그 당시 모니터링했던 무대와 2019년 이후의 무대를 비교 분석한 결과, 최근 연주되는 음악과 공연기법에 많은 변화가 있음을 파악했다.
실례로 악곡 <하나의 대가정>의 2012년 모란봉 악단 공연과 2021년 박미현 외 8명의 공연을 비교해보면, 1) 연주 편성의 대규모화, 2) 오케스트라와 전자음악의 적절한 조화, 3) 원곡의 멜로디를 활용한 전주와 간주에서 리프(riff, 반복되는 짧고 간단한 프레이즈) 사용으로의 변화 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외에도 무대 의상이 군복을 연상시키는 의상에서 한국 대중음악 아이돌 그룹을 연상시키는 의상으로 변화하였다.
특히 ‘2022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74돐 경축 행사’에서 새롭게 등장한 가수 정홍란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헤어스타일과 의상을 선보이며 <열정의 노래>를 열창했다. 편곡된 이 곡은 가사를 강조하기 위한 극적인 화성과 멜로디, 가사 전달에 용이한 리듬 사용 및 부 3화음과 반음계적 진행, 전과음과 계류음, 부딸림 7화음 사용이 두드러진다. 또한 과거 보천보전자악단과 모란봉악단류의 악기 구성에서 벗어나 전자 음향과 관현악기의 적절한 조화, 세련된 오케스트레이션, 전자음악 음원 위에서 연주하는 등 현대화된 면모를 보여주었다.
공연기법에도 변화가 있었다. 무대의 뒤 배경에는 현악기와 금관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지만, 전체적인 소리는 전자 음향이 주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오케스트라 소리와 전자음악의 음향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조절되고 있는데, 이는 컴퓨터로 제작된 음원 위에 오케스트라와 가수가 연주하는 형태로 볼 수 있다. 과거 보천보전자악단과 모란봉 악단의 라이브 연주보다 훨씬 발전된 기법으로, 고도의 능력을 겸비한 프로듀서가 음원을 미리 제작하고 연주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음향을 조절하여 완성도를 높인 것이다.
작곡적 측면에서는 논다이어토닉(nondiatonic, 중심이 되는 조의 구성음이 아닌 음을 포함하는 것) 화성 사용이 돋보인다. 기존의 I-IV-V-I 진행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화성을 전개한다. 전주 8마디에 사용된 리프(Bb/F-F-C/F-F)는 한국 대중가요 <버터플라이>-러브 홀릭스, <아름다운 강산>-이선희, <그대에게>-넥스트 등을 연상시키며, 이후 부딸림 7화음, 차용화음, 논다이어토닉 대리 화성 등 다채롭게 사용하여 곡을 풍성하게 하였다.
북한은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한 이후로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적’ 현상과의 투쟁을 강도 높게 진행해 왔다. 2021년 4월에 진행된 세포비서 대회에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라는 묘사를 하며, 청년 교양에 특별히 힘쓸 것을 주문하였다. 김정은은 2022년 12월 26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조선로동당중앙위원회 제8기 6차 전원회의를 통해 사상, 대중운동을 중시하고, 사회통제강화, 선전선동 관련 부서 위상 강화를 시사했다. 그러나 2022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74돐 경축 공연’에서 등장한 김류경, 정홍란의 무대는 그들 스스로 ‘역사적인 공연, 대 사변적 공연’이라고 표현할 만큼 혁신적인 공연 형태를 취했다. 특히 2023년 ‘신년경축대공연’은 다채롭고 화려한 무대의상과 빙상무용을 가미하며 또 다른 변화를 시도하였다. 곡은 빠른 템포와 경쾌한 리듬 중심으로 편곡되었는데, 북한식 주체창법(민성창법)에서 완전히 벗어난 대중가요 창법을 구사하는 가수들에게 환호하는 관중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엄혹한 국난에 직면한 인민들을 결집시키는 목적과 청소년들의 문화적 일탈과 민심 이반을 막기 위한 고심이 담겨있는 무대였다.
이와 같이 북한 정권의 기본적인 속성은 바뀌지 않았지만, 전술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미 한류 문화에 대한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동향을 올바로 파악해야만 북한을 극복(克復)할 수 있는 콘텐츠를 구상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반도 평화 통일 패러다임은 정치, 경제, 외교 중심이었다. 안타깝게도 정신적, 사상적, 문화적 영역에 대한 접근은 우선순위에서 밀려있었다. 이제부터라도 이러한 측면에서의 통일 연구가 보다 더 활성화되어 남북한 주민의 문화적 갭을 줄여나가는 노력이 요청된다.
※ 위 내용은 집필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발행: 숭실평화통일연구원 발행일: 2023년 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