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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15.] 평화공존으로서의 통일 - 전순영 숭실평화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 23-02-13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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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공존으로서의 통일

전순영 숭실평화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기독교통일지도자학 박사)

 

  최근 이스라엘-요르단 답사여행(2023년 1월 13~25일)을 다녀왔다. 이스라엘 땅은 가나안 원주민, 아브라함과 그 후손 이스라엘 민족, 블레셋 족속, 로마제국, 비잔틴제국, 우마이야(Umayyad) 이슬람왕국, 십자군, 셀주크투르크 이슬람제국, 영국 식민지, 1948년 이스라엘 건설과 팔레스타인 난민화 등, 3천년에 걸친 다양한 층위의 역사적 유산들이 누적되어 있는 곳이다. 우리 일행은 ‘누가 그 땅의 참된 주인인가’를 알아보자는 취지로 이-팔 분쟁지역을 둘러보면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빈곤의 굴레 속에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곳곳에 출입을 통제하는 분리장벽이 서있고 무장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요단강 서편 아랍인 구역의 세겜은 에발산과 그리심산을 배경으로 하며 이집트 총리였던 요셉의 무덤이 있는 곳인데, 군인들의 저지로 잠깐 사진만 찍고 돌아서야 했다. 전날 14세 팔레스타인 소년이 화염병을 투척하다가 유대 군인에게 총살된 사건으로 시위가 벌어져 타이어 타는 냄새가 자욱했던 곳이었다. 또한 우리 일행이 귀국한 다음 날인 1월 26일에는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대원과 주민 9명을 사살했고, 이 작전은 7명의 희생자를 낸 팔레스타인 청년의 유대교 회당 총기 난사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스라엘 사상 가장 극우적이란 평가를 받는 네타냐후 총리의 새 내각이 작년 12월 29일 출범하자마자 중동 내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지역 곳곳에 유대인 정착촌이 확장되고 있는 현장을 보았다. 26년 간 이곳에 살아온 한인 선교사의 말로는, 아랍인들이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 없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과 포도원을 빼앗기고 척박한 외곽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확장은 이스라엘 당국의 적극적인 이주정책과 혜택의 결과이자, 군인과 경찰의 엄호로 지속가능한 것이었다. 중재를 위해 방문한 미 국무부 장관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별도의 국가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지지 의사를 재확인했다. 특히 블링컨 장관은 두 국가 해법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정착촌 확장, 불법 정착촌 합법화, 팔레스타인 주민 가옥 철거와 추방, 성지의 역사적 지위 파괴, 폭력 선동과 묵인’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팔 양국 간의 갈등은 복합적이고 역사적이며 정치경제적 요인들이 얽혀있어서, 국제적 중재나 간섭 또는 정부 주도의 하향식 평화협정으로 근본적 해결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생긴다. 

  예루살렘 남쪽 14km 지점에 아부고쉬가 있고 그 동쪽 40m 아래 십자군시대 교회가 있다.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를 만난 곳이라 하여 ‘엠마오 기념교회’라고도 한다. 그 동쪽에는 이스라엘에서 두 번째로 큰 모스크(이슬람 사원)가 있는데 이스라엘로 귀화한 아랍인이 모여 살고, 서쪽에는 유대교 신자들이 현대 기럇여아림을 세우고 정착하여 세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이런 광경은 평화의 상상을 촉발한다. 기독교와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한반도의 남과 북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한치도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암울한 한반도 정세 속에서 평화공존으로서의 통일 가능성을 가늠해본다. 

 

1.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위한 평화공존의 해법

 

  이스라엘은 1917년 영국의 밸푸어 선언과 1947년 유엔의 분할계획(유대인 국가, 아랍국가, 예루살렘 지역 중립화) 채택 이후, 1948년 영국군 철수 이후의 공백을 틈타 그해 5월 14일 이스라엘 민병대 지도자인 벤구리온의 전격 ‘유대인 국가’ 선포로 건설된 민족국가(nation-state)이다. 1956년, 67년, 73년 발발한 세 차례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국제적으로 이스라엘 지배가 미승인된 지역, 즉 요르단 서안과 골란고원 등의 ‘점령지’에 정착촌이 건설되면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주도하는 저항(인티파다)이 시작되어, 1993년까지 2만 명 넘는 사상자를 냈다. 1993년 9월 이스라엘-PLO 간의 오슬로 평화협정이 체결되었으나, 주민들의 일상생활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양측 내부의 분열을 초래했다. 오슬로 협정은 2000년 캠프데이비드 협상의 실패와 2001년 제2차 인티파다의 발발로 인한 유혈분쟁 등으로 팔레스타인의 최종 지위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실패로 귀결되었다. 두 국가 해법을 기반으로 미국이 중재했던 평화회담은 2014년 이후 근 10년째 지지부진하고 협상은 매번 정착촌 건설 문제로 좌초되었다. 평화를 구축하려는 지도자들은 강경파의 손에 번번이 살해되었다. 역사상 화해와 평화를 위해 나섰던 에이브러햄 링컨,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이 그러했듯이, 오슬로 협정의 기초가 된 캠프데이비드 협상의 주역이었던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과 오슬로 평화협정에 서명한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도 그 대가를 죽음으로 치러야 했다. 이후 팔레스타인 자치기구(PNA)는 강경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내각은 극우 리쿠드 당이 장악하면서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2021년 팔레스타인의 1인당 GDP는 3,166달러로, 핵을 보유한 군사강국인 이스라엘의 52,151달러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즉, 압도적 강자와 수세에 몰린 약자 간의 비대칭적 갈등인 것이다. 강자와 약자의 평화공존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강자의 권리유보와 양보 없이는 불가능하다. 과연 이스라엘은 이-팔 전면전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불가역적인 평화공존을 택할 것인가. 유일신교들의 성지인 예루살렘이 그 이름대로 평화의 마을이 될 수 있을지를 규정하는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 손에 달렸다. 약자가 평화롭다고 말할 때에야 비로소 진짜 평화가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2. 한반도 평화공존과 그 열매로서의 통일

 

  팀 마샬은 『장벽의 시대』(2020)에서 전세계 국민국가의 3분의 1 이상이 국경선을 따라 장애물을 설치했으며, 물리적 장벽은 개인과 사회, 국가와 국제 수준에서 정치를 만들어내고 심리적 장벽을 구축한다고 간파했다. 한반도 남과 북의 심리적 장벽도 높고 강고하다. 통일이 전쟁이나 상대방에 대한 전복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오직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여전히 한국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으로 남아있지만, 현재 남과 북 어느 쪽에도 이 원칙을 실천할 의지는 없어보인다. 

  그러나 이-팔처럼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선택지도 전면전 아니면 평화공존이다. 설령 조만간 급변사태로 북한이 붕괴된다 해도, 국제법상 한국이 개입할 여지가 제한되어 있거니와, 한국의 경제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교류협력을 통해 북한을 국제무대로 이끌어내어 발전을 이루고 인류의 보편가치체계에 편입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핵에 매달리지 않고도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북한사회가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자발적 시민사회가 형성될 때, 내부압력은 임계점을 맞을 것이다. 그 압력이 분출될 때쯤에는 한국사회도 분열과 분리의 장벽을 넘어서는 성숙한 수준에 도달해있기를 바란다. 지금은 평화공존이 답이다. 

 

※ 위 내용은 집필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발행: 숭실평화통일연구원 발행일: 2023년 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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