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1.] 민족공동체통일방안 30주년 그리고 국제화 - 숭실평화통일연구원 노현종 연구위원
- 24-08-2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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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공동체통일방안 30주년 그리고 국제화
노현종(숭실평화통일연구원 연구위원)
30주년을 맞이하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
2024년 8월 15일은 광복 79년을 기념하는 날이다. 하지만 예년의 행사 때에 비해 상당히 소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독립기념관장 선정과 이념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광복회가 대립하였으며, 급기야 광복절 행사에 야당과 독립기념단체들이 불참하는 파행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에 더해 공영 KBS가 광복절 당일 방영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는 기미가요가 등장하여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민주주의하에서는 각 진영과 정당마다 각각 다른 시각이 존재할 수 있겠지만, 결과를 놓고 볼 때 국민의 마음에 감동과 희망을 주는 광복절 메시지는 등장하지 못했다. 오히려 젊은 세대에게는 유관순, 윤봉길, 김마리아, 홍범도 등 광복 이전에 세상을 떠난 독립투사들이 광복의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모습을 AI로 재현한 것이 더 큰 울림이 되었던 것 같다. 암울하고 냉혹한 시대를 늘 긴장된 표정으로 살았던 독립투사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밝게 웃을 수 있는 존재였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숙연하게 만든다.
북한사회와 남북관계 전공자 입장에서 이번 광복절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확립된지 30주년 되는 역사적인 날이다. 해방 이후 통일된 국가가 확립되지 못하고 분단의 역사가 계속된 때문인지, 광복절에는 유독 통일과 관련된 담화가 많이 등장하였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한 시대와 세대를 30년으로 본다면, 이 시기에 확립된 ‘통일방안’ 역시 다 자란 성년이 되었다. 1994년 광복절 축사에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선포될 당시에는,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라는 로드맵, 지미 카터의 방북으로 극적으로 봉합된 북핵 1차 위기, 김일성의 사망으로 인한 심리적 충격, 고립된 북한의 조기 붕괴 가능성 그리고 통일과 민족의 회복에 대한 강력한 지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립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통일의 원칙(자주, 평화, 민주)과 방법(화해 협력, 남북 연합, 통일국가의 3 단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는 이후의 정부들에게도 계승되었으며, 현재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통일정책이다.
‘민족’의 유지와 ‘자유민주주의’
사실 통일부는 올해 민족공동체통일방안 30주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통일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작년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특히 전문가와 국민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공청회를 개최하여,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통령의 연설에서는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대한 새로운 입장이나 의견 표명은 없었다.
‘혈족’과 ‘종족’의 요소를 다소 내포하는 ‘민족’이라는 가치가 민주주의, 세계시민주의 및 다문화주의 등과 상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오래전부터 학계 일각에서 이미 존재하였다. 이러한 우려는 내용상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우리 공동체의 불안을 조성하는 가장 큰 요인은 여전히 ‘북한’ 이슈이다. 따라서 현재 한반도 맥락에서 ‘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팽창적 인종주의가 아닌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또한 북한이 ‘적대적 2국가’를 주창하며 통일과 민족에 대한 논의를 부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쪽에서 ‘민족공동체’를 수정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느꼈기에 기존의 민족에 대한 논의를 수정하거나 보충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번 대통령 담화에서 민족 이념의 고수(固守)는 충분히 수긍되지만,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내용이 빈약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30년전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자유민주주의는 제도적 민주주의를 7년 정도 경험하였고, 문민정부를 2년 정도 경험한 시점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시기의 민주주의는 제도적 측면에 국한되었고, 사회의 민주화는 적극적으로 논의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2024년의 ‘자유민주주의’는 훨씬 다채롭고 역동적이다. 사회 변화를 반영한 활력있는 민주주의, 다음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가 대통령의 연설문에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다소 아쉽다.
통일을 위한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 것인가?
윤 대통령은 이번 광복절 연설에서 세 가지 사항을 제시하였다.
“첫째, 우리 국민이 자유 통일을 추진할 수 있는 가치관과 역량을 더욱 확고히 가져야 하고, 둘째는, 북한 주민들이 자유 통일을 간절히 원하도록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하며, 셋째는, 국제사회와 연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항을 짧은 지면에 담을 수 없으므로 ‘국제사회’의 연대 부분만을 간략하게 논의하겠다.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국제사회의 대상을 명확히 해야 한다. 현재의 안정적인 한-미-일 관계는 사실상 상수이기 때문에 이를 강화하는 것은 새로운 전략이라고 보기 어렵다. 현재의 국제사회는 매우 다양한 행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권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유럽 국가들, 한국과의 경제적 교류를 증진하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 (베트남은 대한민국의 세 번째로 큰 무역 파트너이다), 과거 북한과 가까웠던 아프리카 국가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은 다양한 국제단체, 지역협의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의 채널이 아니라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야 실질적인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다.
둘째, 국가 차원의 큰 통일전략에 기초한 접근이 요구된다. 대한민국이 특정 국가로부터 통일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어떠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와만 연대할 경우, 한국이 신냉전 구도를 강화한다는 오해를 받을 위험성이 있다. 또한 인권 이슈와 민주주의 국가의 도덕적 기준 자체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비민주주의 국가들의 지원을 얻기 위해서는 더욱 정교한 논리와 내러티브가 필요하다. 큰 그림 없이 국제사회와의 연대가 진행될 경우 단순한 립서비스와 알맹이 없는 행사성 이벤트에 그칠 위험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사회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방안 하나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국내외의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수업을 적극적으로 개설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필자는 외교부 산하 재단인 Korea Foundation이 실시하는 이스쿨 사업에 참가하여 남북관계와 북한사회에 대해 강의한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학이 개설되지 않았거나 교수 인력이 부족한 외국대학의 학생들을 국내대학의 교원들이 온라인으로 가르치는 사업이다. 특히 현재 해외에서는 한국학의 인기가 매우 높은 편이지만 이를 가르칠 수 있는 인력은 부족한 실정이다. 만일 남북관계와 통일 문제를 비롯하여 다양한 한국학 프로그램을 개설한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들을 세계의 청년들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프로그램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통일부, 외교부, 교육부와 대학 간의 합리적인 거버넌스가 요구된다.
※ 위 내용은 집필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발행: 숭실평화통일연구원 발행일: 2024년 8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