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일시 : 2022년 11월 09일 13시 30분
장소 : 숭실대학교 베어드홀 501호
종료일시 : 2022년 11월 09일 17시 00분
카테고리 : 학술대회
주제: Paper map과 Digital map을 통해 본 평양의 변화
세션1강사:
김버들 박사 (서울시립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 남창근 박사 ((주)볕터건축사 사무소 이사)
김태윤 박사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 허선혜 박사 (전북대학교 국제융복합연구소 연구교수)
세션2강사:
기정훈 교수 (명지대학교 행정학과) / 임형백 교수 (성결대학교 국제개발협력학과)
이시효 박사 (숭실평화통일연구원 북한도시연구단 전임연구원) / 홍 민 박사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Review _ 박수민, 김경민, 오다은 인턴
2022 추계 국내 학술대회 <Paper map과 Digital map을 통해 본 평양의 변화>
지난 11월 9일, 숭실평화통일연구원 북한도시연구단과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평양학 연구센터가 공동주관한 2022 추계 국내 학술대회가 숭실대학교 베어드홀에서 열렸다.
숭실대학교 장범식 총장의 환영사로 학술대회의 시작을 알렸다.
장범식 총장은 학술대회에 참여한 모든 분을 환영하고, 학술대회에서 의견을 나눌 여덟 분의 발표자와 토론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울러 장범식 총장은 “북한의 수도 평양을 제대로 분석하는 게 통일을 준비하는 실질적인 방법”이라며, 금번 학술대회의 주제가 통일을 준비하는 모두에게 중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리라 생각한다는 점에서 기대를 드러냈다.
이어서 김성배 숭실평화통일연구원 북한도시연구단장의 개회사가 이어졌다.
추계 학술대회를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와 같이 열게 된 데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이어서 금번 학술대회에서 평양시를 대상으로 북한 도시의 과거 모습과 변화에 주목하여 북한에서의 도시와 도시민의 삶의 변화를 감지해 파악하고자 했음을 전했다. Paper map과 Digital map을 활용한 북한 도시변화 분석이 최근 경제 사회 변화로 큰 변화를 겪는 북한 도시민들의 삶을 더 잘 이해함은 물론 이 주제에 대해 보다 깊은 연구를 이루는 계기가 될 것이라 말했다.
다음으로 서울학연구소 염복규 소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염복규 소장은 “북한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도시연구를 중점에 둔 두 연구소가 공동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것에 대해 의미 있는 일”이라 했으며, 시각자료인 ‘지도’를 통해 근대부터 현재까지의 평양공간을 통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금번 학술대회의 의미를 다졌다. 또한 “앞으로도 두 연구소가 지속적으로 북한 도시가 가진 보편성과 특수성을 연구해 경색국면인 현 상황에서 도시 간 상호 이해와 협력 증진의 출발점이 되도록 발전시켜 나가기를 기원”했으며, 학술대회에 참석한 귀빈께 감사의 뜻을 덧붙이며 축사를 마무리했다.
세션Ⅰ Paper Map을 통해 본 평양의 과거 : 전통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발제1 김버들 박사 (서울시립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조선 후기 평양부(平壤府)의 도시구조 변화와 평안감영의 특성
세션 1 ‘Paper Map을 통해 본 평양의 과거: 전통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은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홍식 교수가 좌장을 맡아 서울시립대학교 김버들 박사의 발표와 남창근 박사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김버들 박사는 평양부가 우리나라 문명이 처음 열린 상징성이 있는 데에 비해 도시로서 평양부를 바라보는 연구가 많지 않으며, 대부분의 연구가 해방 이후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조선시대까지의 연구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김버들 박사는 감영과 객관을 기반으로 한 도로화와 도로 주변에 들어서는 시장과 주거지를 살펴봤다. 건물들의 배치가 잘 드러난 고지도와 기성도 11점을 선점해 조선 전기의 평양의 도시구조를 잘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내성과 외성의 구조로 이루어진 평양부지만, 내성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낸 평양부에서의 정비와 영역 변화, 이동하는 감영의 모습을 설명했다. 청나라와 맺은 불평등 조약에 의해 조선이 성을 새로 짓지 못하고 기존의 성을 보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숙종이 남성을 축조하면서 평양부를 감추며 감영을 새롭게 짓는 등 시기 별로 감영을 하나하나 설명하였다. 전근대 시기 평양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는 서울학과 관계가 있으며, 평양을 중심으로 의주, 함흥까지 이르는 서북지역을 고찰할 수 있는 중요한 거점이 되므로, 감영, 객관, 도로, 주거지와 함께 평양부를 연구해야 한다며 발표를 끝마쳤다.
이어서 남창근 박사의 토론이 이어졌다. 남창근 박사는 평양이 북한의 제1의 도시이자 그 역사적 기원이 고구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도시로 중요한 연구대상이며, 금번 김버들 박사의 발표가 조선시대 평양의 도시구조 및 공간 변화와 함께 조선시대 주요 지방행정기관인 평양 감영을 논했다는 점에서 평양이라는 역사도시의 이해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생각을 전했다.
남창근 박사는 어느 시기의 평안감영의 어떤 면을 타지역 감영이 참고했는지 물었다. 이에 김버들 박사는 전국 팔도에 감영이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은 영조 이후로 보고 있으며, 서로 주고받으면서 숙종 때 감영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평양 관찰사가 어디 일정한 지역에 머물고 돌아다니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세종 때, 전국 관아 시설에 표준설계도를 내리고 설계도대로 그렸는지를 다 점검하였는데, 관찰사가 머무는 감영이 아닌 일반 관찰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머무는 관하 시설과 혼동될 수 있다는 말로 답했다.
두 번째 질문으로 고려시대 봉건구조가 현재 개성특별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도시공간구조가 평양에 많이 남아있는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물었다. 이에 김버들 박사는 “고구려 유적하면 고분벽화 등을 떠올리는데, 이것들은 북성 너머에 있다”며, “주변 시설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를 보기 위해선 발굴도 하고 조사도 해야 하지만, 북한이 조선시대의 평양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 답했다.
발제2 김태윤 박사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문서 자료'와 '사진'을 통해 본 근대 평양의 로컬리티
세션 1의 2번째 발표는 ‘문서 자료’와 ‘사진’을 통해 본 근대 평양의 로컬리티’의 주제로 김태윤 박사가 담당했다. 발표를 끝으로 이어진 토론은 허선혜 교수가 맡았다.
본 연구는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개항기의 문자사료와 사진사료가 공존하던 시기의 평양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살펴보기 위해 진행되었다. 그러나 김태윤 박사는 문자, 사진 사료에 모두 보완해야 하는 한계가 존재하듯, 평양을 살아가거나 바라보는 시각 또한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 격차가 존재했다 보고 있다. 김태윤 박사는 본 연구에서 전통 시대를 살아간 조선인들의 시각과 평양에 이주하여 도시 개발을 시작한 일본인들의 시각에 어떠한 차이가 있었는지 알아보고 여러 성격이 중첩된 평양의 모습을 구현해 보고자 했다고 전했다.
일본인들의 시선을 통해 본 ‘근대도시’ 평양
김태윤 박사는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설명을 이어갔다. 먼저, 청일전쟁 이후 1899년 평양이 개시장이 되자 합법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하였다고 말했다. 일본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대도시에서는 각 도시의 역사와 도시인프라를 조사하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를 정리해 편찬하는 사업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료는 평양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평양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사료로 활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인들은 평양성 외성지역에 정착을 시작하였다고 말했다. 일제 초기 상대적으로 주거지가 덜 형성되어 있는 외성 지역에 정착하며 도시계획은 외성 지역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고, 구시가지인 조선인지역과 신시가지인 일본인지역이 구분되어 평양은 이중도시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김태윤 박사는 평양을 조선의 중심도시로 성장시키고 싶어했던 의견이 일본인 내에서 전혀 없지는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며, 이러한 의견들은 평양에 대한 개발논리로도 이어지게 된다고 밝혔다.
평양의 도시개발 및 도시계획은 1920년대 시구개정 사업에서 1930년대 시가지계획으로 그리고1940년대 지방·국토계획으로 이어졌다. 이 외에도 평천리와 선교리는 공업지역으로 개발이 되었고, 당시 사진을 통해 도시계획 및 개발의 결과와 서북지역 중심도시로서의 평양의 모습을 더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근대 사진엽서 및 사진자료 등은 일제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에 한정하여 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 여러 연구에서 이것이 조선의 후진성과 일제의 선진성을 보여주는 증거로 많이 분석되어왔다고 말했다. 대동교 사진은 동평양 서평양을 이어주는 매우 중요 시설한 시설이라 여러 각도에서 촬영되었으며 이는 일제가 보여주고 싶어 했던 사진이라 유추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평양은 개시장이었을 때부터 군사시설이 함께 입지했던 곳으로 도시계획 또한 각종 군시설과 철도시설과 함께 논의되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은 일제가 각종 교육시설과 관공서를 소개한 경우인데, 평양은 개항기부터 선교사들이 여러 학교를 설립한 곳이다. 김태윤 박사는 사진엽서에는 이러한 민족자본과 선교사 자본으로 만들어진 학교는 소개되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일제에 의해 새롭게 설립된 학교만 소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즉, 조선의 역사를 담고 있는 관광지 이외의 시설 등을 담은 사진은 일제의 근대성을 강조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조선인들 역시 근대 도시계획이 도입되면서 근대화된 평양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언급했다.
관광안내지와 문학작품에 투영된 ‘관광도시’ 평양
이어서 김태윤 박사는 일본인들이 평양에 있던 명승들에 대하여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우선 당시 발행되었던 여행 책자인 『조선만주여행안내』(1932)를 살펴보면 일본인들의 평양 유람 순서는 다음과 같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평양역→(전차)→대신궁전→(이하도보)→칠성문→을밀대→기자묘→현무문→모란대→영명사→ お牧の茶屋(오마키노차야)→부벽루→청류벽→대동강에서 선상유람→대동문→(도보)→연광정 →기생학교→(이하 도보나 전차)→박물관→상품진열관→평양역
① 평양신사는 현재 모란봉 극장 자리에 있는 것으로 을밀대에 세워진 것과 조선인 입장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선인에게는 민족탄압의 시설로 기억되기 때문에 가장먼저 방화의 대상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② 칠성문에 대한 자료를 보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의 역사를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구려의 역사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서술하는 방식은 다음 관광지인 을밀대도 마찬가지라 언급했다.
③ 기자묘는 무수한 탄흔이 남아있다고만 표현했으며, 묘의 주인인 기자에 대한 설명이나 고조선에 대한 설명은 미비하다고 말했다.
④ 모란대는 일본인 추천 관광명소라고 설명했다. 임진왜란과 청일전쟁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는 곳으로 임진왜란 때는 조선군과 일본군의 격전지였고, 청일전쟁시기에는 청군의 포병진지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모란대가 위치한 모란봉은 조선인 문학작품에서도 평양을 상징하는 하나의 상징물로 등장한다고 언급했다.
⑤ 연관정 또한 전역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으며 임진왜란시기 전사한 사람들을 기리는 곳으로 명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⑥ 기생학교는 대표적인 관광코스로 기생들의 얼굴과 명단을 수록하여 일본인 관광객들이 실제로 기생학교를 방문하여 관광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게이샤와 다르고, 기생을 육성하는 학교의 존재 자체는 일본인들에게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고 전했다.
나가며: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김태윤 박사는 결론적으로 근대도시 평양은 바라보는 사람들의 위치에 따라 여러 가지의 로컬리티를 지닌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분석했다. 본 분석을 통해 해방 직후 인민민주주의를 표방한 북한이 이러한 유산들을 어떻게 활용했고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가에 대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러한 유산의 정리 과정은 향후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밝히도록 하겠다며, 발표를 끝마쳤다.
이어서 허선혜 전북대학교 국제융복합연구소 연구교수와 토론이 진행되었다.
허선혜 교수는 문자 자료, 사진 엽서 등 자료를 많이 활용한 위 연구에 대해 사진 자료는 연구가 가지는 추상성에 대해서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구체적이고 정형적이라 오히려 시야가 갇힐 수 있다는 단점을 언급했다. 이에 이러한 단점을 어떻게 극복하려고 노력했는지, 그리고 중국인들도 평양에 거주했던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김태윤 박사는 사진 자료 왜곡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위하여 택한 것이 일본인 및 조선인의 시각, 즉 여러 시각으로 보자는 것이었다고 답했다. 더불어 중국인의 평양에 대한 시각을 추가하지 않은 것은 자료의 부족함과 린치와 관련된 부분이 있어 어렵다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상으로 세션1 “paper map을 통해 본 평양의 과거: 전통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가 마무리되었고, 이어서 세션2가 진행되었다.
세션Ⅱ Digital Map을 통해 본 평양의 현재
발제1 기정훈 교수 (명지대학교 행정학과)
A Study of Urban Density in Pyongyang City, North Korea
세션2에서는 기정훈 교수가 가장 먼저 발표를 맡았으며 임형배 교수가 토론을 담당했다. 기정훈 교수는 본 연구에서 평양의 도시공간구조와 도시밀도에 대한 분석을 통해 북한의 도시화 실제를 살펴봤다. 이를 통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도시공간구조 특징을 파악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도시 발전 역사를 비교하며 북한의 도시 공간구조가 더욱 시장경제체제의 도시와 유사성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며, 젠트리피케이션과 유사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발표하였다.
시장경제체제와 사회주의체제의 도시공간구조
(1) 시장경제체제의 도시공간구조
시장경제 하의 도시공간구조는 토지의 가격 차이, 다핵 구조, 인구 통계학, 기술적이고 복합적인 요소가 반영된다. 기정훈 교수는 특히 도시는 동심원 고리의 점진적인 추가를 통해 확장되며 도시의 성장에 따라 주변부에 새로운 동심원 고리가 추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도시공간주조를 분석하는 도구로써 동심원구조를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2) 사회주의체제의 도시공간구조
본 연구에선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도시에서는 토지시장 없이 도시개발이 진행되면서 정치적, 행정적으로 토지이용 결정이 내려지게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사회주의 도시는 ‘도시계획’ 분야가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사회주의 도시들에서는 도심의 고밀도 개발이나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현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기술혁신이나 상업적 기능이 약화되는 등의 도시활력을 잃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 설명했다.
북한에서의 도시개발과 도시공간구조
기정훈 교수는 시대별로 평양의 도시개발을 비교하며 살펴보았다.
(1) 1950년대 평양의 도시개발은 1953년 계획된 ‘평양 마스터플랜’을 기점으로 적용되었다. 이는 평양 대동강부터 보통강까지 인구 백만 도시로 계획되었고 도시 밀도는 20~25% 사이로 유지되도록 했다. 또한 전후 복구과정을 통해 다핵 도시로 계획되기도 했으며, 이러한 각 핵들은 하나의 랜드스케이프를 구성하여 지역 간 완충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2) 1960년대 평양의 도시개발은 과거와 달리 이념과 전쟁승리를 선전할 수 있는 5가지 작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주요 도로 확장, 고층 주거 등장, 대규모 문화시설 계획, 기념비와 광장, 외국인 레저시설 등이 계획되었다. 즉, 60년대는 북한의 도시개발에 있어 정치적인 영향력이 점차 증대되는 시기로 이해할 수 있다.
(3) 1970년대 평양의 도시개발은 도시경관 변화가 이전과 규모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나는 시기다. 70년대 이후 대규모 재개발사업이 전개되고 고층빌딩 등이 세워지게 되며 오늘날 평양 도시경관의 틀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4) 1980년대 평양의 도시개발은 다시 한번 정치적 영향력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국제도시화, 문화도시화, 혁명도시화를 내세운 평양 도시계획과 건축 변화는 88년 서울 올림픽과의 경쟁 관계 속에서 펼쳐졌다고 설명했다. 이 시기에는 세계적인 흐름을 추종하는 건축양식으로 지어지기 시작한 것이 핵심이다.
(5) 2000년대 이후 주요 변화는 2011년 리더십 교체와 함께 만수대지구와 미래과학자거리 그리고 여명거리의 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안창모, 2020). 만수대지구의 경우 김일성 탄생 100돌을 맞이하는 기념비적 사업의 성격을 가짐과 동시에 체제 안정을 위한 건설사업의 성격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70년대에도 지켜졌던 평양성의 역사경관에 큰 변화를 가져온 사업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지향성을 보여준다 말했다. 또한 기정훈 교수는 미래과학자거리와 여명거리는 고난의 행군 시기를 마무리하고 선군 시대의 평양 전성기를 이끌어갈 지도체제 확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건설사업이라고 보았다.
평양의 도시공간구조 분석
기정훈 교수는 평양의 도시공간구조 분석결과 대체적으로 평양 중심부의 지역 건물 밀도가 높으며, 중심부 지역의 건물 밀도의 표준편차도 크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도심의 밀도가 높고 그 밀도가 점차 낮아지다가 공간중심지에서 5km이후로 정치중심지에서는 4km이후로 그 기울기가 거의 0에 가깝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1950년대 이후 평양 도시개발에 있어 정치적, 행정적 동력이 유일했다는 점과 이에 따른 고밀도 개발이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결론
기정훈 교수는 본 논문에서 평양의 공간적 중심지와 정치적 중심지를 중앙으로 하여 1km 단위의 동심원을 구성해 동심원내의 건물의 평균밀도를 분석했다. 평양의 경우 도심의 건물밀도가 가장 높으며, 4-5km까지 급한 경사도를 나타내며 감소하다가 4-5km 이후에는 경사도가 완만한 양상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양상은 오히려 시장경제체제에서의 도시공간구조와 유사한 형태라고 덧붙였다. 북한에서 부동산과 주택시장 진입장벽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가, 각종 공공기관, 기업소, 개인(돈주), 중국인까지 주택건설의 참여자가 되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와 함께 젠트리피케이션과 유사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보다 미시적 측면에서의 후속연구가 필요하며, 특히 항공영상이나 인공위성영상을 활용한 연구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공간적 현상을 보여준다면 부한 도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하며 발표를 마쳤다.
이어서 임형백 교수의 토론이 진행되었다.
임형백 교수는 북한이 정치적 노선 투쟁을 통해 최종적으로 확정한 사회주의 도시화의 방향은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구현하겠다는 길일성의 교시로 정리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는 정치적 원인에 의해 김일성의 개인적 취향까지 반영됐다고 생각한다 말했다. 북한에서 세대군을 명확히 하진 않지만 상위계층들이 평양 중심부에 투자를 하게 되며, 김일성의 개인적 취향이 반영되고 그 다음에 장마당 세대에 의해 다른 어떤 공산주의 국가보다 자본주의적 요소가 강하게 반영되고 있는 것이라 밝혔다.
발제2 이시효 박사 (숭실평화통일연구원 북한도시연구단 전임연구원)
평양 모자이크: 위성사진과 GIS를 활용한 평양 구역별 빈부격차 연구
두 번째 발표는 이시효 박사가 맡았으며, 본 연구는 이시효 박사 외 김성배 교수(숭실대학교 명예교수), 기정훈 교수(명지대학교 행정학부 교수)가 참여하였다. 토론은 홍민 박사가 담당했다.
본 연구는 GIS 정보와 위성사진을 이용해 도시빈곤과 관계성이 깊을 것으로 생각되는 평양의 구역별 건물밀도, 층수, ’땅집‘, 자동차수, 트럭수, 도로길이, 철도길이, 야간조도 등을 변수로 추출해 분석했다. 연구 결과 빈부격차와 강한 상관관계를 가진 변수로 건물밀도, 조도, 자동차 수를 파악했으며, 그 외 변수들도 빈부격차와 정(+) 관계에 있음을 확인했다. 이시효 박사는 북한 도시의 빈부격차 연구는 시장도입 이후 변화하고 있는 북한 사회에 대한 파악과 국제사회에 북한 인권에 대한 의식을 견지할 뿐 아니라, 향후 개방, 개혁 시기 북한 빈부격차 완료를 위한 연구의 시작점이라 알렸다. 따라서 본 연구는 북한 도시, 특히 인구, 영향력 있는 사회계층, 공간적 밀도, 향후 북한 변화의 핵심 도시인 평양 내의 구역별 빈부격차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하며, 그 구체적인 방법론으로는 위성사진과 GIS 자료를 활용해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연구방법: 위성사진과 GIS 활용
1. 개발도상국 연구 사례
최근 개발도상국의 빈곤지역 연구를 위해 머신러닝과 딥러닝 기술이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본 연구에서는 도시 빈부격차 연구를 위해 조도의 한계를 보완하는 이미지 분석으로 1) 농경지, 2) 자동차, 3) 건물 밀도와 녹지, 4) 그림자(건물 높이), 5) 도로와 교통, 6) 지붕 마감재, 7) 특정 공간 형태를 조사해 통계자료와 정확도를 비교 분석했다. 자동차와 건물, 도로, 지붕 마감재 이미지 분류 작업에는 딥 러닝(Deep Learning) 기술을 활용했다.
2. 평양 적용 방법
본 연구는 평양의 구역별, 동별 빈부격차를 확인하기 위해 위성사진과 GIS 자료를 활용했다. 또한 자동차와 트럭 개수를 확인하기 위해 QGIS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도시 내부 격차에 대한 통계 자료를 구하기 힘든 상태로 위성이미지를 통한 양적 통계분석은 다각도의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3. 자료수집 결과
1) 건물밀도와 층수연구 중 평양 도심 건물밀도는 모란봉 구역인 1.059로 가장 높았으며, 이에 반해 밀도가 가장 낮은 지역은 도시 외곽의 형제산구역(0.111)이었다. 건물의 밀도는 GIS 자료의 개개 건물 면적에 층수를 곱하고 이를 구역별 적용 면적으로 나누었다고 설명했다.
2) 건물층수는 낮은 건물이 많은 지역이 더 빈곤하다. 평양에서 전체 건물 수 중 1층 건물의 분포가 높은 지역은 도시 외곽 지역으로 역포구역(0.9071)과 용성구역(0.8949)이며, 도심에서도 공장지대와 그 배후 거주지역인 선교구역 (0.8982)과 사동구역(0.8991)이 1층 건물의 밀도가 90 퍼센트 가까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와 대조적으로 10층 이상 건물 수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중구역(0.0467)이었고, 20층 이상 높은 건물 수는 도심의 중구역과 평천구역에 집중되었다고 말했다.
3) 땅집은 본 연구에서 슬레이트 지붕을 가진 단층집 중 거주 가능한 면적인 10.2~477㎡ 로 규정하고, 총 139,391개 건물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분석결과 GIS 적용 면적대비 땅집 면적 밀도가 높은 지역은 선교구역(0.137), 동대원구역(0.121), 역포구역(0.079), 대동 강구역(0.077)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인구수와 대비했을 때는 다른 결과가 나오는데 사동구역(0.102)이 가장 높았다고 설명했다. 두 결과로 볼 때 땅집의 밀도는 대체적으로 도시 외곽 구역과 공장지대가 위치한 대동강 남쪽 구역에 집중 되어있다고 언급했다. 주목할 만한 결과로는 대동강 북쪽 도심지역에도 땅집이 분포되어 있으며, 위성사진을 통해 확인해 보면 낡은 아파트 사이나, 새로 건설되는 아파트 중 정 안에도 땅집이 위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4) 자동차와 트럭은 평양 24,212개 자동차와 트럭 수를 분석한 결과, 1k㎡ 당 자동차 수의 경우 평천구역(164.10), 보통강구역(161.02), 동대원구역(153.65), 중구역(148.57)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트럭의 경우 평천구역(61.21), 보통강구역(59.77), 선교구역(56.62), 동대원구역(47.21) 순으로 나타나 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개발도상국 도시의 연구사례와 달리, 평양 자동차와 트럭 분포는 도로길이 보다는 구역 위치 더 강한 연관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평양의 정치, 경제적 특성과 함께 도로길이의 측정이 포장도로뿐 아니라 땅집 사이 골목길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5) 도로와 철도는 평양의 경우 단위면적(k㎡)당 도로길이(m)는 선교구역(13,743), 역포 구역(13,394), 동대원구역(10,659), 대성구역(10,513) 순이라고 말했다. 평양 도심보다는 대동강 남쪽 동평양 지역에 도로길이가 길게 나타난 것은 좁은 골목길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한 평양의 단위면적(k㎡)당 철도길이(m)는 평천구역(2,714), 서성구역(2,633), 보통강구역(2,513), 형제 산구역(2,021) 순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철도길이는 평의선, 평덕선, 평남선 철도라인과 승강장이 위치한 곳에 집중적으로 나타났으며, 그 구역별 격차가 컸다고 언급했다.
6) 야간 조도는 밀도에 더 관계가 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조도는 도시 빈곤과 빈부격차 연구에서 중요한 변수로 사용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평양의 단위면적 당 야간조도를 보면 중구역(97.94)이 평균 대비 3.8배로 월등히 높다고 말했다.
4. 통계 분석
평양의 경우 통계 자료가 없어 변수 분석 및 해석을 위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으며, 본 연구의 통계적 분석은 크게 전통적 통계분석 방법과 머신러닝 두 가지 부문으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통계분석의 목적은 분석 결과의 타당성보다는 그동안 확보할 수 없었던 북한도시 관련 자료를 새롭게 생성하고, 통계분석 등 양적 분석 실현 가능성을 확인하는데 있다고 설명했다. 첫 단계로 평양의 구역별 확보된 자료 중 빈부격차와 관련된 변수들 간의 상관관계를 산포도를 통해 분석했다. 다음 단계로 평양 도심 184개 동별의 밀도, 조도, 자동차수, 트럭수, 도로길이 자료를 추가적으로 만들어 상관관계와 회귀분석을 진행하였다. 이시효 박사는 이 연구에서 실시한 회귀분석의 목적은 빈곤 수준의 결정요인에 대한 정확한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도로서 의미를 가진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위성 이미지로부터 확보한 자료들은 회귀분석을 위한 충분한 자료에는 미치지 못하므로 도시 빈곤에 관한 정확한 인과관계 규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빈부격차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되는 평양 도심 184개 동별 번수와 동별 여러 변수 중 빈부격차와 상관성이 높을 것으로 생각되는 야간조도, 면적, 자동차수, 트럭수, 도로길이도 추출했다고 밝혔다. 그 다음 단계로 야간 조도수준을 종속변수로 하고, 면적, 자동차수, 트럭수, 도로길이를 독립변수로 하여 회귀분석을 실시했다.
5. 결론
이시효 박사는 본 연구가 자료 부족으로 진행되지 못했던 북한 도시의 빈부격차 분석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본 연구의 의미는 결과의 정밀성보다 북한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또한 위성이미지를 통한 연구는 북한 도시연구의 정확도를 높이고 기존 연구 결과를 검토하는 효과를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연구의 시작점으로서 이 연구가, 향후 딥러닝, 머신러닝 등 AI 기술을 통한 분석기법으로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이어서 홍민 박사의 토론이 진행되었다.
홍민 박사는 세 가지 질문을 하였다. 첫 번째 질문은 빈곤 데이터 사용 유무와 왜 빈곤으로 설정을 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두 번째 질문은 북한을 어떻게 규정짓고 보냐에 따라 다른데, 개발도상국과 북한을 같은 선상에서 두고 해석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물었다. 세 번째 질문으로는 북한을 단순 지표(조도 등)로 분석하는 접근방식은 좋으나 좀 더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하며, 왜 평양을 연구 대상으로 선택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평양은 빈곤 데이터의 해석 공간으로 보기 보다 오히려 지방 도시를 먼저 보는 게 더 풍부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의견을 남겼다.
여기에 대해 이시효 박사는 데이터에 대한 오차는 앞서 발표를 할 때 언급을 했으며 연구단의 목적은 빈곤과 관련있어서 선택했다 말했다. 또한 평양과 지방 중에 평양을 선택한 이유는 북한을 대표하는 도시이며 문화를 이끌어가는 힘이 있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또한 현재 상황을 보고 미래를 내다보는데 큰 의미를 갖는 차원에서 평양 연구가 중요하다 생각해 채택했다 전했다.
이상으로 ‘세션2 Digital Map을 통해 본 평양의 현재: 김정은 집권 이후’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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