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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3.] 탈북민의 사회통합과 남북한 사회통합의 준비- 윤인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 24-06-1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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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의 사회통합과 남북한 사회통합의 준비

 

 윤인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탈북민은 그를 호칭하는 많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러 정체성을 가진 특유한, 영어로 표현하면 unique한 집단이다. 여전히 정부의 공식 명칭인 ‘북한이탈주민’(Defecting North Korean residents)은 북한을 이탈한 북한 출신 주민이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참여정부 시기 통일부는 ‘탈북자’라는 일반적인 명칭이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 남한에 정착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새터민’이라는 호칭을 여론조사로 선정했으나 널리 통용되지는 못했다. 일부 연구자와 사회활동가들은 탈북민이 억압적인 북한 체제를 벗어나려 했고, 북한으로 귀환 당하면 처벌받는다는 점을 근거로 ‘난민’으로 인식한다. 필자는 탈북민은 넓은 의미에서 이주민이고, 가치 중립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북한이주민’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통일부는 1997년 7월 14일에 시행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을 기념해서 7월 14일을 ‘탈북민의 날’로 제정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서 탈북민을 “먼저 온 통일”로 부르면서 민족에 기반한 “통일의 역군”이라는 인식을 표명하였다. 이렇듯 탈북민은 탈주자, 난민, 이주민, 통일 역군과 같은 서로 다른 다중적 정체성을 가졌다. 호칭은 부르는 사람과 불리는 사람 간의 관계를 반영하는데, 어떤 호칭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관계의 내용과 그에 따른 권력과 지위가 달라진다. 이 글에서는 남북한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탈북민을 조명하고자 한다. 

  우리가 탈북민의 한국사회 통합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지 하나의 이주민 또는 소수자집단을 연구하는 것 외에 통일 이후 남북한 주민 간의 사회통합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남북 간의 대립과 긴장이 첨예한 시점에 통일은 논하는 것이 생뚱맞아 보이지만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온다”라는 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한민족의 오랜 역사에서 남북 분단은 찰나에 불과하고, 한국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도 남북한의 평화적인 통일, 아니면 최소한 평화로운 공존과 협력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일지라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굳은 신념과 소망을 갖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라도 조금씩, 꾸준하게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탈북민의 한국사회 통합의 사례는 수천만 명 수준의 남북한 주민 간의 사회통합의 가능성과 문제점을 예측하는 시나리오라고 볼 수 있다. 시험 전에 예상 문제를 미리 받고도 준비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무책임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탈북민의 사례를 통해서 남북한 주민 간의 사회통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예측하고 해결책을 준비해야 한다.

 탈북민의 사회통합에 관한 선행연구들은 공통으로 탈북민이 한국사회에서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관계와 심리문화적으로도 통합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물질만능주의적인 한국사회에서 탈북민이 남한 선주민과 동등한 지위에 빠르게 오르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통일 이후 남북한 주민 간의 사회통합은 더욱 어렵고 심각할 것이라는 점을 예지해야 한다. 그리고 남북한 주민이 동등한 지위에 도달하고 서로 간의 친밀감과 연대감을 형성하는 데는 최소한 2~3세대가 걸릴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 주민과 사회가 진정성 있고 각별한 통합 노력을 기울이고 통합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남한 주민이 불리한 위치에 있는 북한 주민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이들이 통합 과정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지 않고 능동적으로 잠재력을 개발할 기회와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통일 후의 한국은 기본적으로 다원화 사회가 될 것이다. 이질적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체계와 가치관, 생활양식들이 혼재된 상태가 상당 기간 존속할 것이다. 이러한 다원성 속에서 공통의 국민 정체성과 연대감을 끌어내서 구성원들이 사회발전을 위해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하게 하는 것이 통일한국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다.

  통일 한국의 사회사상 또는 철학은 내셔널리즘(민족주의 또는 국민주의)을 넘어 다문화주의 또는 상호문화주의가 되어야 한다. 남북한 간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통일 후 남한식의 체계를 북한에 일방적으로 이식하려 하거나 남한의 가치 기준을 가지고 북한 주민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북한 주민들이 적지 않게 내면화해 온 평등주의, 집단주의, 탈물질주의 등은 자본주의 체제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평가절하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가치들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통일한국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어야 할 ‘공동체 사상’을 발전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탈북민의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통일 후 북한 주민은 하류 계층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제에 대비해서 최소한 출신 지역에 따른 차별과 배제를 금지하여 형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육 및 고용 분야에서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을 취하는 것이 불평등과 이로 인한 사회갈등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끝으로 통일 정부는 사회통합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여 다문화적 가치와 분배정의가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구속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의식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남한이 통일 후 사회통합을 주도하려고 한다면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 사회복지 등의 측면에서 북한 주민을 포용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역량은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므로 지금부터 통합역량을 증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 사회의 사회 약자층과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지역, 성, 인종/민족, 계층에 따른 불평등 체계를 개선해서 누구나 사회의 기회구조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통일을 준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자체가 더욱 성숙한 선진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 위 내용은 집필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발행: 숭실평화통일연구원 발행일: 2024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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