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3.] 분열을 향한 통일정책 - 숭실평화통일연구원 이시효 연구위원
- 24-09-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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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을 향한 통일정책
이시효(숭실평화통일연구원 연구위원)
“환자들 응급실 돌다가 더 죽어라”. 의사‧의대생 커뮤니티에서 나돈다는 글을 보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오늘 북한 체제가 몰락한다면, 우리는 하나 된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두 쪽 난 가운데 치러진 올해 광복절, 윤석열 대통령은 50회 ‘자유’를 언급하며 ‘8‧15 독트린’을 의미심장하게 발표했다. ‘자유와 안전이 보장되는,’ ‘풍요로운,’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통일 한국을 이루겠다는 비전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남북합의를 통해 지속되어오던 ‘민족공동체통일방안(1994)’의 첫 단계인 ‘화해협력’을 요원하게 하고 남한 중심의 사실상 ‘흡수통일론’을 주장한다고 본다. 윤정부는 ’흡수통일‘을 생각하고 있는가? 경험으로 알 수 있듯 말의 진위는 행동으로 증명된다.
올해 통일부 예산은 작년 대비 24.9% 줄었다. 물론 예산 삭감은 통일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부자 감세‘ 등의 이유로 올해 세수가 ’30조 펑크‘난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는 사업“ 이외 분야 예산 삭감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하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통일부 예산 삭감 비율은 매우 높다. 통일부 예산 삭감의 영향은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라면 쉽지 않게 느낄 수 있다. 필자는 문재인 정권 시기 본 논평에 ”이제는 인권을 논할 때“라는 제목으로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채택과 북한 인권 보호를 촉구했다. 한데 현 윤정부 시기는 진짜 ”인권만“ 논한다. 통일부 예산이 대폭 삭감된 상황에서도 대통령이 강조하는 인권 예산은 2배 이상 증가했으며, 통일관련 기관의 연구자 채용은 인권분야가 월등히 높아졌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을 위한 직접 식량 및 경제적 지원은 ’담대한 구상‘에 따라 (언제 이루어질지 요원한) ’핵 포기 선언‘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의 인권 유린과 굶주림은 세상에 널리 알리되, 직접 도움은 정치적으로 (특히 미국에) 유리한 상황으로 변화될 때나 가능한 일인 것이다.
통일부 예산 삭감에 따라 북한 연구의 지속성은 위협받고 있다. 통일과 북한 분야 신진연구자는 가느다란 희망처럼 통일부 연구지원을 바람다. 한데 10년 이상 연구비를 지원하던 ’통일부 신진연구자 정책연구 과제‘가 올해로 지원이 끊겼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몇 년간 진행되던 모 기업이 북한 신진학자 장학제도도 사라졌다. 이제 통일연구, 특히 북한 연구자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얼어붙은 농담처럼 ”북한 연구자들의 ’고난의 행군‘“이란 씁쓸한 말이 나돈다. 국민들의 (특히 젊은 세대의) 통일에 대한 기대감과 관심이 사라지고 북한을 연구하는 대학과 기관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현 정부의 정책은 통일과 북한 연구를 더욱 얼어붙게 한다. 한데, 늙은 지혜자 같은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잘 생각해 봐라. 북한이 차츰 변하고, 단계별로 합의와 변화를 통해 통일이 이루어질 것 같으냐. 결국 북한은 한순간 붕괴할 것이고, 그렇게 통일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니 부산떨지 말고 잠잠히 그날을 기다려라.“
1989년 11월 9일. 동서독 시민들에 의해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독일은 통일을 이루었다. 서로 왕래가 있었지만 갑작스런 통일을 예상했던 독인 주민은 거의 없었다. ’8‧15 독트린‘에서 윤대통령이 주장하는 3대 통일 전략 중 하나인 ”북한 주민들의 자유 통일에 대한 열망 촉진“은 남북한의 이런 극적인 상황을 염두한 듯 보인다. 하지만 독일 통일 과정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통일비용 부담의 고통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역사를 경험한 한 민족 두 시민이 하나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35년이 지난 현재 독일은 ’동독 2등 시민,‘ ’동독의 결핍‘을 넘어 정확히 통일 전 동독지역이 ’극우정당(Afd) 득세‘ 양상으로 나타났다. 마치 한국의 대선 결과를 지도로 보듯 동서독이 분열되어 있는 것이다. 세계 역사를 볼 때 결국 통일의 시작점은 영토이지만 그 종착점은 하나되는 사람에 있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남북한 주민이 하나되는 통일을 위해 인도적 차원의 남북교류가 재기해야 한다. ’북핵 포기 선언‘ 후 지원 원칙은 남북교류의 시기를 무한히 늦추고, 한국을 배제한 북한과 러시아, 북한과 중국 관계의 밀착을 가져올 수 있다. ’8‧15 독트린‘에서 제시한 ”북한 주민들의 자유 통일에 대한 열망 촉진“도 대북방송이나 민간단체에 (방관하다시피) 의지하는 ’USB 남한 드라마 유입‘ 보다 남북교류가 더 효과적이다. 필자가 남포 이탈주민과 인터뷰한 바에 따르면 손에 잡히지 않는 남한 드라마나 영화보다 남포항에 도착한 대북지원 쌀과 ’질긴 쌀포대‘가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 기술발전을 인식시키고 민족적 동질감과 신뢰를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우리는 부잣집 아들이 나오는 드라마보다 길바닥에 떨어진 만원짜리를 신뢰하는 법이다.
또한 사람의 통일을 위해 북한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지속되어야 한다. 인권뿐 아니라, 북한 사람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북한 곳곳은 어떤 지역적 특성들이 있는지, 변화의 시기 개발을 넘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할지 등 여러 방향의 연구가 지속되고 확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말뿐인 선포보다는 연구예산을 늘려야 한다.
통일의 기회는 두 번 오지 않을 수 있다. ’일단 북한 체제가 변하면 그때 대응하면 된다‘는 기다리는 식의 논리는 위험하다. 독일을 보라. 역사가 그렇듯 통일의 시간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뒷통수가 대머리인 기회’처럼 우리를 비껴가고 분열을 향한 더욱 고착화된 남북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줄 것이다.
<참고문헌>
반기웅. “‘환자들 응급실 돌다가 더 죽어라’... 의사 커뮤니티, 도 넘은 막막“ (경향신문. 2024년 9월 11일자).
김현빈. “‘두 쪽 광복절’에 공세적 통일론 내놓은 尹” (한국일보. 2023년 8월 16일 1면). 이 글을 당시 한국일보 1면 기사였음에도 인터넷과 한국일보 홈페이지 기사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박광연. “통일부 내년 예산 1조964억 확정...국회 심사에서 122억 삭감” (경향신문. 2023년 12월 21일자).
김윤나영. “올해 세수펑크 30조 현실화...정부 추계 정확도 ‘낙제점’” (경향신문. 2024년 9월 2일자).
이시효. “이제는 인권을 논할 때,” (평화통일논총. 2021년 9월 30일자).
신형철. “‘통일 독트린’때문?...통일부 북한인권사업 예산 2배 넘게 늘어,” (한겨례신문. 2024년 8월 27일자).
신은별. “‘이민=모든 위기의 시작’이라는 독일 극우, ‘동독의 결핍’ 파고들었다.” (한국일보. 2024년 9월 12일자).
이러한 갈등 촉발과 민주주의의 후퇴는 세계 자본주의의 충격요법(shock therapy)을 통해 성공적 경제성장을 이루었다고 평가된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다음 참고. 김종현. “헝가리 오르반, 새 유럽의회 그룹 구성 추진...‘가장 큰 우익 단체 될 것’.” (한국일보. 2024년 7월 1일자).
※ 위 내용은 집필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발행: 숭실평화통일연구원 발행일: 2024년 9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