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15.] 한반도 통일 그리고 북한도시의 미래 - 임승빈 건축가
- 22-08-29 15:23
- 조회557회
관련링크
본문
한반도 통일 그리고 북한도시의 미래
임승빈 (독일 라이프치히 건축가)
탈북민들의 수는 코로나19에 대한 북한의 봉쇄조치로 현재 그 수가 많이 감소하였으나 과거 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꾸준히 늘어나 철저한 통제와 감시에도 2000년대에 들어서는 한 해 3000명에 육박하는 수가 되었다. 그 목숨을 건 탈출에서 우리는 자유와 생존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소망과 더 나은 삶과 행복에 대한 꺾이지 않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부연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한반도의 통일 즉, 남북한을 가로막고 있는 철책이 사라질 경우 많은 수의 북한 동포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남한으로 이주해 올 것이라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현상이 북한과 남한의 도시들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쉽게 예상하기 힘들다.
우리보다 먼저 분단과 통일 그리고 통일 이후 30년을 경험한 독일의 사례를 보며 우리 사회와 특히 북한 도시에 닥칠 위기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 1990년 독일은 갑작스럽지만 어느 정도 예견된 통일을 맞이한다. 독일에선 통일 이후를 “nach der Wende” 라고 말한다. 직역하면 “변화 후”라는 뜻으로 세상에 수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그 단어는 통일이란 뜻으로 쓰이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그 의미는 수많은 전쟁과 아픔, 분단과 통일을 경험한 독일 국민들에게도 1990년 통일의 의미는 유난히도 특별하다고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통일 직후 많은 변화들이 스나미처럼 밀려들었다. 특히 거의 대부분의 동독의 기업들과 공장들은 자본주의 경쟁에서 도태되어 문을 닫게 된다. 회사들이 줄줄이 도산하자 동독의 젊은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독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거리에 빈집들은 흉물처럼 널려있고 빈곤과 급속한 도시의 노령화는 한순간에 온 나라를 죽어있는 도시같이 만들었다. 사회학자 파울 빈돌프 (Paul Windolf)는 장벽이 무너진 후 5 년 동안 동독인의 최대 80%가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일자리를 잃었다고 추정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89년과 90년에 약 80만 명이 그리고 4년 동안 19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먹고 살길을 찾아 오래된 삶의 터전을 떠나 서독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필자의 친구 또한 그때를 회상하며 울분을 토해내던걸 많이 들었다. 당시 동독의 약사였던 친구는 도심에서 약국을 하고 있었는데 세련된 서독 약국들이 도심 곳곳에 들어서며 순식간에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지금까지 다시 약사로서의 삶을 되찾지 못했다. 마음과 경제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갑작스러운 퇴장이었다. 그 당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동독인들 사이에는 "이전에 측정된 적이 없는 우울한 분위기“가 있었고, 성인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본인이 이 사회에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라고 느꼈다고 답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상황이 참고 견디면 좋아질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통독 이후 10년 사이에 거의 대부분의 동독 도시들은 사람을 잃었다. 이 과정에서 동독 연방주는 세수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 기반 시설이라고 불리는 학교, 병원, 스포츠 및 레저 시설, 문화 기관 등이 붕괴된다. 즉, 기업과 공장이 문을 닫고, 일자리가 없어 사람들이 떠나고, 도시도 점점 더 낙후해 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 악순환은 다시 한번 2000년대 초반 젊은 청년들과 여성들 그리고 특히 전문직 종사자들이 더 좋은 일자리와 생활환경, 더 높은 임금과 자녀교육 등의 이유로 서쪽으로 이주하게 되는 사회적 현상을 만든다. 그리고 그 현상들은 동독의 도시들을 더욱더 급속도로 붕괴시켰다. 이것이 통일 이후 20년 동안 발생한 동독 도시의 붕괴 현상이다. 통일 당시 동독의 경제력은 서독과 비교해 43% 수준이었지만 현재 북한은 남한과 비교해 1.8%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그 격차는 날로 더 벌어지고 있다. 한반도 통일 이후 벌어질 인구이동과 북한 도시의 붕괴는 어쩌면 필연적으로 다가올 숙제이며 또 우리는 독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변화 앞에 서게 될 지도 모른다. 그뿐만 아니라 남한 도시들의 급격한 인구증가로 벌어질 사회문제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이 문제에 미리 준비하고 대처하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통일은 2천5백만의 탈북민을 만드는 통일이 될 것이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어려움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독일이 통일된 지 벌써 30여 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렇다면 동독 도시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아니면 그곳에서 우리는 다가올 한반도의 그리고 북한 도시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가?
2010년 이후 결과가 뻔해 보였던 질 수 밖에 없는 암담한 경기에서 동독 도시들의 반격이 시작된다. 그리고 2017년 이후 드디어 인구이동의 역전현상이 일어난다. 바로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동하는 인구수가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하는 인구수 보다 높아진 것이다. 특히 2013년 필자가 살고 있는 라이프치히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라이프치히 붐“ 이라는 사회적 기현상이 벌어진다. (라이프치히 붐은 20년간 지속되어왔던 동독의 인구 유출 현상이 멈추고 결국엔 라이프치히를 중심으로 2013년 그 수가 역전되어 더 많은 수의 서독 사람이 동독으로 이주해온 현상) 한 해 2000 명씩 그동안 동독에서 더 좋은 일자리와 환경, 교육과 문화생활을 핑계로 떠났던 사람들과 더불어 서독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이제는 라이프치히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서독의 여느 도시보다 더 좋은 삶의 질이 보장된다는 의미이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공감하고 동참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라이프치히는 1930년 인구수 70만이 넘는 독일에서 5번째로 큰 제조업과 무역이 발달한 도시였다. 또 처음으로 국제 박람회와 분데스리가가 열린 영향력 있는 도시였다. 하지만 전쟁과 분단을 겪으며 그 어느 동독 도시보다 황폐해졌고 동독시절 50%의 노동력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제조업 중심의 도시였기에 통일 후 더 큰 위기를 맞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독으로 이주했고 거리는 빈 공장과 창고들, 6만 채가 넘는 빈집, 80만 m2의 상점과 사무실이 빈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하지만 현재 HWWI 보고서에 따르면 모든 사회 인프라와 미래 가능성들을 종합해 2030년까지 가장 많은 인구 유입이 있을 도시로 Leipzig가 뽑혔고 현재 독일 도시 중 20세 이하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젊은 도시이며, 가장 역동적이고 잠재적인 도시를 평가하는 도시 다이나믹 지수에서도 베를린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필자는 건축가로서 라이프치히에서 활동하며 도시의 희미했던 맥박이 다시 힘차게 뛰고 있음을 느낀다. 도시에 텅 비어있던 땅들은 요란한 포크레인과 기중기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던 빈집과 공장들은 너도 나도 제게 어울리는 새 옷들을 입으며 화려했던 옛 도시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그 황폐해진 도시는 어떻게 화려한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는가? 모두가 찾는 가장 살기 좋은 도시가 되었는가? 이곳에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없지만 우리가 진지하게 바라보며 배워야 할 내용을 몇 가지 적어본다. 도시란 더불어 사는 공간이다. 도시를 바꾸고 변화 시킬 때 소수의 정치가나 편중된 전문가 집단이 모든 것을 결정지어서는 안 된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서로 다른 생각과 배경을 가진 시민들의 충분한 사회적 합의 끝에 도출해낸 결과물이어야 지속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순간 눈에 보이는 결과물과 성과를 위한 이벤트성 프로젝트가 되면 안 된다. 꾸준한 노력과 인내로 오랜 시간 기초를 쌓아가야만 가능하다. 제발 천천히 가자는 이야기이다. 건물 하나를 고치고 짓는데 수많은 사회적 합의와 법적 절차가 필요한 라이프치히에서 건축가로서 일을 하다보면 많은 어려움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 어려움 가운데 많은 것들을 배운다. 모두가 함께 차근차근 만들어간 도시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 모두에게 가치 있는 추억이 된다. 천년이 가는 도시를 만들려면 100년의 시간은 필요하지 않을까?
한반도 통일 그 이후 북한 도시에 닥치게 될 위기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빈집과 상점들이 즐비할 것이고 암울하고 부정적인 분위기가 도시를 삼킬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독일 라이프치히라는 도시에서 희망을 찾는다.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겨우내 숨어있던 씨앗이 봄을 맞아 싹을 틔우듯 차근차근 땅을 다지고 기초를 쌓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아름다운 도시로 그 모습을 찾아갈 것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 땅이 될 것이다. 그런 미래를 꿈꿔본다.
※ 위 내용은 집필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