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5.] 평양시 주민의 삶과 북한 체제 - 박성열 숭실평화통일연구원 초빙교수
- 22-08-2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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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 주민의 삶과 북한 체제
박성열 (숭실평화통일연구원 초빙교수)
북한에 있어 평양시는 단순히 ‘수도’라는 차원을 넘어 국가적 자부심이자 체제의 최후 보루 같은 곳이다. 북한의 사회주의 헌법은 제7장에서 ‘수도는 평양’임을 선포하고 있고, 별도로 ‘평양시 관리법’을 제정하여 ‘평양은 주체의 성지이고 조선 인민의 심장’(제1조)이며, ‘평양시 공급 식량과 연료는 우선 보장한다’(제38조)라고 명시하고 있다. 평양시는 한마디로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이자 김일성의 혁명역사를 그대로 재현해놓은 혁명의 수도이며 사회주의 지상낙원 꿈을 실현하고자 한 곳이다.
그렇다면 평양시 주민들은 현재 어떻게 살고 있을까? 평양시는 서울의 3배 정도인 1,743㎢의 면적에 18구역 2군의 행정구역 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310만 8,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1). 먼저, 주거문제는 ‘평양에 살아야 사람대접 받는다’는 인식으로 지방에서 계속 유입되어 오면서(1980년: 180만→1990년: 250만→2000년: 270만→2020년: 310만) 주택난이 심각해지고 있다. 시장화 진전 이후 거주 신고 없이 평양에 사는 미거주자도 70만 이상으로 보고 있다2) 북한에서 주택은 원래 국가 소유였으나, 점차 거래가 이루어지고 개인 재산화 되고 있으며 평양에서 주택 구매수요는 넘친다. 북한은 2021년말 당 전원회의 결산에서 평양시 1만호 살림집 건설에 이어 2022년 새로운 1만호 살림집 건설에 나설 것을 결의했고, 2022년 1월 5일 최희태 평양시 인민위원장은 ‘올해 당 창건일(10.10)까지 마무리 짓겠다’(노동신문, 2022.1.5.자)고 공언하였다. 평양의 주거지역은 계층별로 나뉘어 진다. 상류층(권력층, 외화벌이, 돈주 등)은 중, 대동강, 평천 구역 등 중심지역에 주로 거주하고 중류층(시장 소매업, 일선 간부 등)은 역포, 서성구역 등 주변 지역, 그리고 서민들은 외곽 지역에 거주한다.
한편, 이러한 대형 건설공사는 힘 있는 기관들이 돈을 벌어들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아파트를 지으려면 당국 허가를 받고 자재를 동원해야 하는데, 결국 돈주와 평양시 수도건설 총국 등 특권 기관이 결합하게 되며, 뇌물과 수탈이 뒤따른다. 비용을 적게 쓰고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무리한 공사를 하다 보면 부실 공사가 되기 쉽다. 1992년 통일거리 건설장의 고층아파트 붕괴, 2014년 평천구역 23층 고층아파트 붕괴 사고로 다수 군인과 주민이 사망하는 등 크고 작은 붕괴사고가 발생한 근본 이유이다.
평양 주민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먹는 문제를 보자.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평양시민의 5%인 특권계층은 계획경제에 의한 국가 공급으로 살아가고 95% 주민들은 시장에서 자체적으로 벌어들인 소득으로 먹고 사는 걸로 나타났다3). 북한의 핵심 엘리트층은 매일, 혹은 매주 식료품 냉동차로 고기, 채소, 과일 등 식자재를 집으로 공급받는다. 그러나 대다수 주민들은 배급이 아닌 상설화된 종합시장(평양에만 30개 이상)에서 장사를 통해 번 돈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다. 사회 안전원이나 군인, 지역 당 간부 등은 별도 체계를 통해 식량을 국정 가격으로 배급받고 있으나 충분치 않아 이들도 시장을 통해 대부분 식량을 조달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평양 주민들은 종합시장 매대 1곳(60㎝ 정도)을 150-200달러에 당국으로부터 구매하여 장사를 하며(별도로 자릿세 매월 상납), 중산층의 경우 월 평균 300달러(북한 돈 24만 원 정도, 1달러에 8,000원)정도 벌어 식비에 60% 정도 쓰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4). 서민층은 메뚜기 장사를 통해 월 20-30달러를 벌고 거의 모든 소득을 식비로 쓴다. 2020년 북한의 곡물 생산량은 수요량인 575만 톤보다 135만 톤 부족한 440만 톤에 불과하고, 2021년도에도 469만 톤 수준으로 분석된다(농촌진흥청)5). 대북제재와 코로나19 이후 봉쇄로 외부의 곡물 지원이 급격히 감소한 점을 감안하면 평양의 서민층은 하루하루 힘겨운 삶의 여정을 이어가는 것으로 짐작된다.
평양 주민들의 생활 인프라인 전기와 수도 사정도 여의치 않다. 주요 에너지원은 수력(남강,미림갑,봉화갑문 수력발전소), 화력(평양화력발전연합, 동평양화력 발전소)이나, 원유 부족과 시설 노후화로 필요한 전기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해 고층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고, 겨울철 혹한기에도 제대로 난방을 하지 못한다. 겨울에는 온수통을 안고 자거나 석탄(연탄) 보일러를 이용한다. 상류층은 변전소에 뇌물을 주고 단독으로 전기를 가져다 쓰거나 150달러 정도 주고 태양열 전지판을 설치해 물을 데우거나 난방에 이용한다. 수돗물은 통상 오전 30분 오후 30분 급수이나, 수도관이 노후해 수질이 좋지 않고, 수압도 낮아 고층아파트에 물을 공급하지 못하고 통일거리와 광복거리 등 고층아파트는 한 달에 1번 수돗물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코로나 19이후 관심의 대상이 되는 보건의료 서비스는 평양에서도 의료 서비스 ’무상치료제‘가 유명무실해지고 서민들의 진료기관 접근이 쉽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원래 북한의 진료시스템은 집 주변의 1차 진료소-2차 시(군,구역) 진료-3,4차 상급 진료 등 단계별로 이루어지고 지역별로 담당의가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 상류층만 봉화진료소와 남산진료소 등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고 일반인들은 비공식적으로 치료비(뇌물)를 주거나 특별한 연고가 없으면 양질의 진료를 받기 어렵다. 일반 주민들은 병이 생기면 병원보다 시장을 먼저 찾고 있고, 이로 인한 부작용(가짜 약, 약물 오남용, 마약중독 등)을 겪기도 한다6).
평양 주민들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공공서비스 실태를 개략적으로 검토한 결과, 북한체제 유지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 평양은 북한에서는 드물게 아직도 국가 공급체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주민들의 생활은 사실상 시장(종합시장, 메뚜기 시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시장에서 소득을 얻고, 또 그 소득으로 시장에서 물품을 구매하는 것이 정착되어 있다. 주민들은 시장을 통해 필요한 것을 구입하고 소비할 수 있어 과거와는 다르게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태도를 나타낸다. 둘째, 북한 당국(당, 특수기관, 행정기관 등)도 시장을 통해 통치와 특권 기관 운영 자금 및 권력 엘리트 순응을 유도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한다. 이는 평양은 물론 북한 전역에서 시장화를 되돌리기 어려운 주요한 배경이 될 것이다. 셋째, 시장 진입과 탈퇴가 당국의 권력(허가와 단속)과 연계되면서 부패가 심화되고 구조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구조화된 부패는 자원 배분을 악화시킬 수 있으나, 국가와 지방 권력이 개인의 이익을 보장해주되 일정 부분 수탈해가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면서 어쨌든 주민들은 먹고 살고 권력기관은 운영되며 엘리트 계층은 부를 축적하며 살아가는 체제 순기능적 작용을 하는 측면이 있다. 넷째, 시장화를 통한 새로운 계층화가 진전되면서 불평등 문제가 점차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주민을 정권 충성도 기준으로 핵심-동요(기본)-적대 계층으로 구분해왔으나, 시장화 확산과 개인 능력에 따른 소득 창출이 가능해지면서 새로이 권력과 소득 수준을 기준으로 상-중-하류층으로 나뉘어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계층간·지역간 생활수준 차이는 장기적으로 주민 간 불평등 인식을 높이고 사회 불안정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회주의 체제 연구의 권위자인 Janos Kornai는 공산당의 독점적 정치권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는 국가 소유 형태의 재산권과 재산권에 대한 관료적 조정의 우위를 의미하고, 이는 다시 계획경제와 권력의 중앙 집중을 이끌어내 경제 현장에서 만성적 공급 부족 등을 유발하였음을 밝혔다7). 사회주의 체제는 이러한 제도 간 친숙성·정합성을 바탕으로 한 완전성, 혹은 정체성(entity)이 체제 유지의 핵심이나, 시장화와 사적 소유권, 지방과 기업소의 자율성 부분 인정(분권화) 현상은 관료적 조정체계 및 재산의 국가 소유와 긴장관계를 조성하게 되며 체제 위기로 이어짐을 규명하였다. Kornai에 따르면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동구와 소련이 혁명적 과정을 거쳐 해체되고 중국과 베트남이 개혁·개방으로 이어진 것도 사회주의 체제 내 제도 간 정합성이 어긋난 때문으로 설명된다.
북한은 현재 세계 유일의 사회주의 체제 완성체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라고 할 수 있다8).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정치(당 우위 국가) 및 경제체제(중앙계획, 국가소유)가 앞으로 시장과의 위화감(비친화성)을 어떻게 조정해 나갈지가 관건이며 주목된다 하겠다. 지금까지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로를 보면, 북한 정치경제 시스템은 시장경제 비중이 커질수록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평양 주민의 삶이 시장을 통해 영위되는 현상들을 감안할 때 북한의 정치경제 체제는 이미 변화의 트랙에 올라탔다고 볼 수 있으며, 시기의 문제일 뿐 결국은 변할 가능성이 높다. Kornai가 지적한대로 그 변화의 방향은 변화의 속도와 정도가 결정할 것이다.
남한은 이런 점을 감안하여 단기적으로 북한 문제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북한 내부체제의 변화를 냉철하게 직시하면서 평화적 분단관리와 북한체제의 연착륙, 평화로운 통합을 지향하고 대비하는 것이 현명할 것으로 보인다.
1) 북한 인구는 2008년 유엔 지원으로 실시된 인구센서스를 참고해 통계청이 매년 추정한 북한통계자료를 활용한다(www.kosis.kr/bukhan). 2008년 조사 당시 평양 인구는 325만으로 조사되었으나, 북한 당국이 평양 과밀화를 우려해 행정구역을 축소 조정하면서 인구도 준 것으로 나타난다.
2) 주성하, 서울과 평양사이, 82-84.(기파랑, 2017).
3) 채수란, 북한이탈주민 면접조사를 통해 본 평양시민의 가처분 소득과 소비행태: 종합시장 경제활동 중심으로, 통일인문학, 2019. 평양의 5% 특권층은 국가에서 특별 관리되기도 하지만 무역과 건설 등 과정에서 뇌물수수를 통한 축재도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4) 채수란, 북한이탈주민 면접조사를 통해 본 평양시민의 가처분 소득과 소비행태: 종합시장 경제활동 중심으로, 2019.
5) 정은미, 북한주민의 식생활, 통일연구원, 2021.
6) 모춘홍, 정병화, 북한과의 공생, 그 (불)가능성: 식량문제와 보건의료 실태를 중심으로, 현대사회와 다문화, 2019.
7) Janos Kornai, 사회주의 체제의 정치경제학 1. 제15장. pp. 605-638. (차문석, 박순성 옮김, 나남, 2019)
8) 동구 사회주의국 가들과 소련은 1980년대말 혁명적 상황을 거치며 정치경제 체제가 전환되었으며, 중국과 베트남은 정치체제는 유지하면서 경제개방과 개혁을 단행하였고, 북한과 마지막까지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던 쿠바는 2016년 3월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을 계기로 경제적 개방에 나섰다.
※ 위 내용은 집필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