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15.]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초석 - 서문기 숭실평화통일연구원장
- 22-09-1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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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초석
서문기 (숭실평화통일연구원장)
한반도 자체는 세계에서 무력 충돌의 위험성이 가장 높은 지역 가운데 하나이며,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래 70년 동안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폭 4Km의 비무장지대에 100만 명에 이르는 군사적 대치가 진행되어왔다. 최근에는 국제분야의 싱크 탱크인 경제평화연구소(Institute for Economics and Peace)가 세계 163개국을 대상으로 <세계평화지수(GPI), 2022>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나라는 14년 연속 1위를 차지한 아이슬란드를 포함하여 대부분 유럽에 있으며 한국과 북한은 각기 43위와 15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구도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의 길은 어려운 여정일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의 체제경쟁(system competition)이 가장 압축적으로 축적되어 왔기 때문이다. 냉전체제의 역사적 산물로 등장한 남북한의 국가 주도형 모델은 발전과정에서 중요한 변수가 된다. 남한이 추구하는 자본주의는 서구에서처럼 절대왕정에 대항하면서 자유주의를 체계화된 것이 아니라 서구로부터 반강제적으로 이식된 것이었다. 이러한 특수성은 분단 상황과 맞물리면서 실제로는 본래 의미의 민주주의가 아닌 권위주의적 특성을 내포하게 된다. 북한도 세습적 통치체제와 같이 전체주의적 국가사회주의로서 권력의 본질적 성격은 남한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각기 자유 또는 사회 민주주의의 주요 절차가 형식화되고 핵심 기제가 왜곡됨으로써 사회구성원의 저항이나 투쟁을 통해 사회갈등은 심화 또는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 분단 갈등의 해결에 대한 가능성 또한 시간 축을 따라서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단일민족의 공통분모는 시간이 지나면서 무너지고 새로운 기득권 집단에 의해 또 다른 사회구조가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더욱이 시대정신의 변화와 사회적 기대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약속이행의 의무를 저버리거나 한반도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만 한다면, 발전의 본질적인 의미를 둘러싼 사회갈등과 권력 이행에 대한 요구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생명과 귀중한 희생을 담보로 어렵게 마련한 새로운 틀 속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의 문제가 자의적으로 규정하는 적폐 세력의 타도에만 집중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북한 정치적 지배계급은 민생을 위한다는 대의를 강조하면서 대중 앞에서 늘 당당한 태도로 임하지만, 실제로는 ‘뒷전의 공모(behind the conspiracy)’에서처럼 이념적 진영과 상관없이 이해관계에 기초한 그들만의 카르텔을 공고히 함으로써 공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해 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한반도의 주인인가?
미래의 권력 중심부에는 남북 또는 여야를 막론하고 동질적인 기득권 세력들이 변함없이 포진하면서 권력의 포획 현상이 이루어져 왔다. 실질적인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고 사회의 제반 문제점을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부재한 권력의 하수인들에 의해 중요한 공적 자리들이 채워짐으로써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훌륭한 인재들은 대부분 배제되고 있는 상황이 반복될 따름이다. 민주화와 자유화를 표방하는 좌우 각 진영에서 정작 민주와 자유의 본원적 가치를 잃어버린 채 이를 인정하지 않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 발전의 역설(developmental paradox)이 놓여 있다. 예를 들어 115년 관측 사상 최악의 폭우 속에서 평소에 말 많고 위세 등등한 수많은 특권층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보여주기에 집착하는 권력계층의 몽매한 의식 속에서 사회구성원의 절망을 보게 된다. 국가적 위기나 정책실패에서 세비나 연봉을 반납하여 기부하고 솔선수범하는 지도층의 도덕적 책임의식(noblesse oblige)은 우리 세대에서 과연 불가능한 것인가? 삶의 질과 공정성에 대한 약속이 정치적 구호 속에서 공허하게 그치고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면서 정치 권력에 대한 신뢰 문제는 임계점에 이미 오래전에 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통일이 세계 평화의 초석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 영역에서의 일대 혁신이 필수적이다. 국가권력에 기생하여 민의를 망각한 채 사회적 자원의 독점과 세습을 통해 현상 유지(status quo)와 지대 추구(rent-seeking)에 집착하는 기득권층에 의해 사회체계가 부패해 가는 것을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권력의 무한 특혜와 군림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무료 봉사와 섬김에 기초하여 시대적 소명에 바탕을 두는 정치지형에서 발전경로의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사전에 정책 입안과 실행을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국가권력이 갈등의 원천이 아닌 통합을 지향할 때, 통일의 발전모델은 체제 수준을 넘어 평화의 길로 인도될 수가 있다. 요컨대 사회갈등을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통일을 가능하게 하는 선제 조건은 국내외 환경변화 속에서 일상생활에 충실한 사회구성원에 의해 국가권력과 정치세력을 제어할 수 있는 남북한 사회적 토대의 기반을 마련하여 공동선을 실천하는 것이다.
※ 위 내용은 집필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