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5.] 러시아의 절박함, 동북아시아 지정학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나? -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23-12-1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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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절박함, 동북아시아 지정학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나?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러시아의 푸틴은 가는 곳마다 저자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중국의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블라디보스톡을 중국의 수출항으로 개방한다고 했다. 북한의 김정은과 10월에 만나서 로켓 및 위성기술을 전수하겠다고 하였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질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중국의 지원이 필요했고 북한으로부터 대량의 포탄을 긴급하게 얻을 수밖에 없었다. 작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만 하더라도 많은 전문가는 러시아가 쉽게 이길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러시아에 만만치 않게 돌아갔다. 우크라이나의 저항과 반격이 의외로 강했고, 유럽과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물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공짜는 아니다. 유럽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지난해 유럽은 러시아로부터의 천연가스와 석유를 공급받지 않았다. 유럽은 러시아로부터 대부분 파이프라인으로부터 천연가스를 공급받았는데 러시아 천연가스를 사지 않게 되자 북아프리카, 중동, 미국 등으로부터 LNG를 수입하여야 했고 그 결과 가격은 MMBtu당 4달러에서 한 때 90달러까지 치솟았다. 그 결과 유럽 국가의 가스 및 전기요금이 3-4배 이상 크게 올랐다. 그 여파는 우리나라에까지 미쳐 난방비 폭탄으로 이어졌다. 발전연료인 천연가스 가격의 급등을 전기요금 인상이 따라가지 못하자 한전은 올해 적자가 50조 원 가까이 급증하게 되었다. 그나마 지난해 유럽의 겨울은 춥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금년 겨울이 춥다면 유럽은 또 다시 무척 큰 희생을 치르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러시아로부터 우크라이나를 지켜내기 위하여 대동단결하였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을 묵인한다면 그다음 목표는 폴란드 그리고 발틱 3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핀란드 등 인접 국가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위기의식으로 인해 유럽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결행하였고 러시아의 에너지를 보이콧하는 등 강력한 대처에 나선 것이다. 유럽 각국의 정상들은 연이어 우크라이나를 방문하였고 뜻밖으로 선전하는 우크라이나 군대와 결의에 찬 젤렌스키 대통령을 응원하고 지원하였다.
미국 또한 러시아에 대한 응징에 나섰다. 지난 8월까지 미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규모는 500억 달러(약 67조 원)에 달하는 군사적 지원을 포함하여 1,000억 달러(약 134조 원)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밖에도 EU가 400억 달러에 달하는 군사 지원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였는데 미국과 EU로서는 이번 기회가 러시아의 힘을 약하게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핵무기 강국인 러시아는 핵무기를 쓸 수 없는 재래식 전쟁을 치르고 있다. 또한, EU와 미국의 위성 지원과 드론 등의 사용으로 우크라이나 대평원에서 노출이 심하고 대규모 이동이 쉽게 파악되는 탱크 등 재래식 무기의 효용은 크게 떨어지고 있다.
예상보다 전쟁이 장기전으로 흘러가고 교착 상태가 지속되면서 러시아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탄약 부족 등 여러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듯한데 중국은 러시아를 지원하면서 나름대로 큰 경제적 이익을 챙기고 있는 모습이다. 푸틴과 시진핑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세 차례나 만났다. 작년 9월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서 만난 이후, 금년 3월 시진핑이 모스크바를 방문했고, 다시 푸틴이 금년 10월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一帶一路) 10주년 기념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방국가의 제재로 석유와 천연가스를 팔 수 없는 처지였으나 중국과 인도가 그 판로를 제공했다.
중국의 지원에 러시아가 보낸 가장 놀라운 답례품은 지난 6월에 발표된 블라디보스톡의 개방이었다. 보다 정확하게는 중국의 국내화물을 위한 환적항으로 블라디보스톡 항구를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중국은 이미 2007년부터 헤이룽장성으로 향하는 환적을 블라디보스톡 항을 통해 시작하였다. 이제 지린성 환적화물을 추가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블라디보스톡의 이용을 확대한다는 것의 큰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블라디보스톡이 포함된 연해주 지역은 본래 중국의 영토였다. 2차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는 1860년 베이징 조약을 체결하는데 이때 영국이 홍콩을 할양받자 러시아도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청나라 사이에서 협상을 중재한 몫을 요구해 블라디보스톡이 포함된 연해주를 청나라로부터 뺏어낸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영토 강탈 이상의 치명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중국이 태평양으로 바로 연결되는 루트를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연해주를 뺏음으로 말미암아 러시아는 중국이 만주지역에서 직접 태평양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모두 봉쇄한 것이다. 그 결과 만주지역에서 바다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여순 반도의 다롄과 뤼순밖에 없게 되었고 지린성, 헤이룽장성 등 중국의 북만주 지역은 사실상 육지에 갇혀 버린 내륙이나 다름없게 된다.
중국의 장제스는 2차대전 후 중소 우호동맹조약을 체결하면서 스탈린에게 다롄, 블라디보스톡 그리고 사할린 섬을 돌려달라고 하지만 러시아는 다롄과 뤼순 그리고 만주철도를 돌려주고 블라디보스톡과 사할린 섬은 반환하지 않았다. 중국은 홍콩의 경우 영국이 130년이 지난 후 반환을 약속한 것을 예로 들면서 1980년에도 러시아와 협상을 계속하지만 베이징 조약의 내용을 번복하지 못한다. 그런데 러시아가 중국에 부분적이나마 블라디보스톡의 개방을 먼저 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라고 생각된다.
러시아는 중국뿐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도 많은 양보를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김정은이 푸틴과 정상회담을 한 장소는 러시아의 우주기지 보스토치니다. 김정은은 당시 러시아의 로켓 및 인공위성 기술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지난 11월 21일 북한은 3차 군사정찰 위성 발사에 성공했는데 여러 전문가는 러시아의 기술이전이 결정적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평가한다. 러시아가 이처럼 자국의 로켓 발사 기술을 이전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는 왜 중국과 북한에 대해 과거와는 달리 이처럼 이례적인 호의를 베푸는 것일까? 그만큼 러시아가 절박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러시아는 유럽에 대해 석유와 천연가스를 팔지 못하고 있고 또 서방의 제재로 석유에 대해 배럴당 60달러 이상의 값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 그리고 중동 등으로 러시아의 석유는 공급되고 있으며 가격도 충분히 60달러 이상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중국의 협조가 컸다. 중국은 지난해보다 32.6% 늘어난 300억 달러에 가까운 수입을 러시아로부터 기록했다. 돈이 필요한 러시아에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을 것이다. 또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탄약이 거의 떨어졌는데 북한으로부터 긴급 수입에 나섰다. 북한은 러시아에 컨테이너 1,000개 물량의 탄약을 공급했다고 하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북한이 1년 전부터 대량생산에 돌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러시아의 푸틴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많은 것을 걸고 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의 승패는 향후 러시아의 전략적 포지션을 크게 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제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터진 후 두 번째 겨울에 접어든다. 생각보다 전쟁이 장기전으로 흘러가게 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전쟁이 끝난 후 바뀌게 될 러시아의 위상이 어떻게 동북아의 새로운 지정학 변수로 떠오르냐이다. 러시아, 중국, 북한은 미국과 서방세계라는 공동의 적으로부터 경제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는 처지이다. 이 올드보이들이 다시 주거니 받거니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각자의 사정과 속셈은 알 수 없다. 문제는 이 세 나라가 퇴로 없고 생산적이지 못한 방향에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절박감으로 유발된 일시적 협력이 동북아 지정학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 위 내용은 집필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발행: 숭실평화통일연구원 발행일: 2023년 1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