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2.]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보는 강한 민족주의의 역설 - 조홍식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24-01-12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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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보는 강한 민족주의의 역설
조홍식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년 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종결될 기미를 보이는 않는다. 비참한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둘 다 기독교 국가로서 성탄절을 기렸다. 다만 우크라이나에서는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기존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교회는 율리우스력에 따라 1월 7일을 크리스마스로 기념해 왔으나 올해 우크라이나는 많은 가톨릭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삼았다. 전쟁을 벌이는 두 나라 사이에 문화적 차별화가 차근차근, 하지만 깊숙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에른스트 겔너는 민족주의를 민족이라는 문화적 단위와 국가라는 정치적 단위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으로 정의했다. 근대 국가는 특정 영토와 주민에 대해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하는 성격을 가졌기에 현실에서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민족은 국가만큼 수월하게 구분할 수 있는 단위가 아니다. 동아시아의 한반도나 일본처럼 역사와 언어, 관습 등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민족 단위를 형성한 경우는 세계에서 오히려 예외에 속한다. 동유럽처럼 거대한 평야와 초원 지역에서 다양한 슬라브 민족이 공존하는 지역에서 문화적 단위로서 민족을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언어를 기준으로 보면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벨라루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다양한 나라가 모두 북부 슬라브계 언어를 사용한다. 특히 벨라루스, 러시아, 우크라이나는 종교도 같은 그리스정교로 문화적 동질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지역이자 주민들이다. 실제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하나의 제국에 속해 있었던 세월이 수 세기에 달한다. 이런 문화적 동질성과 역사적 운명 공동체의 과거로 인해 러시아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를 형제국가로 여기면서 하나의 통합 단위를 형성하는 대상으로 여겼다.
매우 유사한 언어와 종교적 특징을 공유하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인들은 소련이 붕괴한 1990년대 이후 각각 나라를 형성하면서 따로 정치적 살림을 차렸으나 여전히 형제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주민과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주민이 평화롭게 공존했고, TV나 영화, IT 등 대중문화 영역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많은 부분을 공유했다.
물론 정치적으로 우크라이나 동부에 자리 잡은 러시아어 사용자들은 러시아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했고, 반대로 서부에 있는 우크라이나어 사용자들은 유럽연합과 긴밀한 관계를 희망했다. 하지만 키이우나 하르키우, 오데사 등 대도시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어 사용자들은 큰 문제 없이 함께 살았다. 달리 말해 러시아가 진정 큰 형처럼 포용적이고 통합적인 틀을 만들어 우크라이나를 끌어안았다면 유럽연합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문화적으로 가까운 우크라이나인들과 하나의 커다란 정치·문화 단위를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포용과 통합은 아무 체제나 펼 수 있는 철학과 정책이 아니다. 자유를 허용하고 자율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만이 가진 능력이고 성격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독재가 점차 강화되었던 러시아는 급기야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로 병합했고, 2022년에는 전반적 우크라이나 침공을 실행했다. 러시아의 내부적 독재는 외부적 침공으로 연결되었고 푸틴은 강한 러시아 민족주의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그는 러시아를 위협하는 서방과 우크라이나의 나치 세력으로부터 민족을 보호하는 구세주를 자청했다. 외부의 적과 국운을 건 전쟁을 벌이면서 내부의 적을 틀어막을 수 있었던 셈이다.
강한 민족주의의 역설은 주변에 역시 강한 민족주의적 반응을 초래한다는 거의 물리적인 법칙이다. 러시아가 군사력을 과시하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두 민족을 연결하던 형제애나 문화적 근접성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언어의 차원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우크라이나어 공용의 습관은 사라지고 이제 우크라이나어로 통일되는 추세다. 블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원래 러시아어를 모어로 하는 유태계다. 그는 전쟁 이후 공식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어만 사용한다. 대통령뿐 아니라 러시아어가 대세였던 많은 동부 지역에서도 우크라이나어로 사람들이 전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도입부에서 언급한 크리스마스 날짜의 변화도 상징적이다. 기독교 세계는 11세기 서유럽을 지배하는 로마의 가톨릭과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에 중심을 둔 그리스정교로 나뉘었다. 이후 그리스와 발칸반도가 이슬람 세력인 오토만 제국에 점령됨으로써 모스크바가 제3의 로마라고 자칭하며 부상했다.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 교회는 모스크바에 자리한 러시아 교회에 속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서 우크라이나 교회는 독립을 선언했다. 이번 우크라이나 교회의 크리스마스 날짜 변경은 유럽연합의 가톨릭이나 그리스정교(불가리아, 그리스 등)의 관습으로 넘어간 사례다.
이처럼 러시아의 강한 민족주의는 우크라이나의 강한 민족주의적 반발을 초래했다. 침공으로 전쟁을 일으켜 정치적 대립을 만들어낸 것은 물론, 문화적으로 언어를 가르고 장벽을 세우며 가장 강한 믿음의 영역인 종교에서도 돌이키기 어려운 선을 그은 셈이다. 사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도 우리는 유사한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중국이 강한 민족주의를 내세울수록 티베트나 위구르 지역의 반감은 쌓이고 있다. 심지어 홍콩이나 대만처럼 역사를 공유하는 지역조차 문화·정서적으로 중국과 멀어지고 있다.
반면 민족주의를 최대한 억제하고 개방과 포용의 민주주의나 법치를 앞세우는 유럽연합은 브렉시트와 같은 우여곡절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회원국들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거시 역사적으로 유럽은 1950년대 달랑 6개국으로 시작했으나 이제 27개국을 포함하는 거대한 대륙적 규모를 자랑하게 되었다. 총칼과 포탄을 앞세워 자신의 역사적 시각을 강제하는 러시아보다 자유를 존중하며 공평한 규칙을 적용하는 유럽연합에 가입하겠다고 우크라이나나 저 멀리 코카서스의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등도 여전히 줄을 서는 이유다.
그렇다고 유럽연합이 민족의 존재나 전통과 감정을 불도저처럼 밀어 없애는 기구도 아니다. 오히려 민족의 정서와 제도를 존중하면서 회원국 간 협력을 도출해 내는 방식이다. EU는 분열되었고 무기력하다는 등 많은 비판의 대상이긴 하나 강한 민족주의가 유발하는 충격과 대립을 완화하고 공존을 가능케 하는 검증된 제도임은 틀림없다. 2023년 12월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와 공식 가입 협상을 시작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미래의 비전과 희망을 선사했다.
※ 위 내용은 집필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