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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1.] 환상(環狀)의 실사구시 통일방안 - 박종수 위원장

  • 22-08-2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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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환상(環狀)의 실사구시적 통일방안

박종수(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왜 우리는 통일을 원하는가? 새삼스럽게 원론적인 명제를 던져본다. 단순히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라는 감상적 통일론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실사구시적 관점에서 보면 부국강병이다. 통일이 되어야 선진국형 인구와 영토 규모를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분단상태에서도 이미 ‘선진국’이라는 브랜드를 확보했다. 지난해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공식 분류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2020년 기준으로 군사력 6위, 경제력 10위다. 그렇다면 통일이 돼서 정말 평화롭게 더 잘 살고 더 강해질 수 있는가?

 우선 통일논의에 앞서 분단 77년사를 반추해 본다. 자주파는 외세를 배격하고 남북한 당사자끼리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선(first best)’의 선택이다.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두 손을 치켜들 때 ‘대한통일 만세!’를 부르는 것으로 착각했다. 우리 민족끼리도 스스로 분단의 벽을 허물 수 있다는 자긍심과 기대감으로 가슴 설렜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4차례의 남북정상간 만남이 있었다. 두 정상은 백두산 정상에 올라 통일의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2년 뒤 개성의 남북한연락사무소가 폭파당했다.

  동맹파는 굳건한 한미동맹만이 통일을 담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차선(second best)’의 통일방안이다. 지난 2018년 역사상 처음으로 북미 간 정상이 마주했다. 그것도 1년에 3번이나 만났다. 정녕 한반도의 봄이 오는 것으로 믿었다. 그렇지만 2019년 2월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모든 것은 원점으로 회귀했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도 출범 2년째이지만 가시적인 진전이 없다. 오바마 정부와 마찬가지로 ‘전략적 인내’ 수준에 머물 듯 하다. 반면 북한은 폭죽놀이하듯 미사일을 쏘아 올린다. 대북제재의 강도를 아무리 높여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히려 굶어 죽기 보다는 병들어 죽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국경을 봉쇄한 북한이다. 

 

 이제까지 통일담론의 시계추는 ‘최선’과 ‘차선’ 사이를 오가고 있다. 자주파와 동맹파간 논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최선’은 커녕 ‘차선’에도 이르지 못했다. 두 진영은 모두 통일을 향한 거보를 담보하지 못했고 최종성적표는 ‘북한의 핵무장’이라는 낙제점이었다. 이제까지의 통일논의는 환상(幻想)에 불과했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다. 이러한 견해가 양비론적 시각으로 폄하될 수 없는 것은 어느 한쪽 주장만으로는 필요충분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분단이 우리 민족의 염원에 반해 타의로 결정되었듯이, 통일도 우리의 의지만으로 쟁취될 수 없다. 남북한 당사자끼리의 처절한 몸부림도 주변강국의 입김 앞에선 무기력하기만 했다. 이렇듯 한반도 문제는 민족 내부의 문제이면서도 외교적 해결을 요하는 매우 복잡한 퍼즐과 같다. 실사구시적 관점에서 이제 우리는 ‘차차선’(third best)으로 눈높이를 낮춰야 할 때다. 요체는 미·일·중·러 및 남한의 환상(環狀)고리 안에 갇혀있는 북한을 어떻게 국제사회로 끌어 내는가이다. 

 남방은 비무장지대다. 미군과 유엔군이 평화적 관리의 명분으로 주둔하고 있다. 북방은 사회주의 우방국인 중국·러시아 국경과 접하고 있다. 북한정권은 당장 먹고살기 힘들 때는 중국에 손을 내밀면서도 항상 자국의 중국화를 우려한다. 1500여km의 북·중 국경을 필요하면 열지만,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걸어 잠근 상태다. 신압록강대교는 북한진입 구간 1m를 완공하지 않은 채로 남겨 두었다. 또 하나의 북방 인접국은 러시아다. 두만강 하구의 39km가 양국 국경의 전부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후 ‘새로운 길’을 천명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회주의 체제의 ‘오래된 길’이었다. 외형적으로는 자력갱생을 외쳤지만, 내부적으로는 군사후견국에 기댔다. 항용 그래왔듯이, 민생보다 정권 유지가 우선이었다. 권위주의 정권의 최우선 과제는 지도자의 신변안전이요 체제의 안전보장이다. 신변이나 체제의 불안을 느낄 때는 러시아로 달려가 무기를 요청했다. 이러한 관행은 김일성·김정일에 이어 김정은 정권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담보해줄 나라는 바로 러시아뿐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라선 개방특구는 수도 평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외부사조가 유입된다고 해도 중국의 단둥루트보다는 덜 위협적이다. 그곳은 북·중·러 3국의 접경지대로서 상황에 따라 중·러간 이이제이할 수도 있다. 또한 유엔개발계획이 1991년부터 추진해온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의 현장이다. 한반도를 에워싼 환상국들과의 이해충돌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다. 특히 최근 러시아의 동방정책, 중국의 일대일로정책, 북한의 경제총력노선과 한국의 신북방정책 접합지대로서 초국경협력을 위한 최적의 지경학적 여건을 갖추었다. 미국의 버클리대학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는 동북아 역내 국가간 기능적 통합과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한반도의 북부지역, 중국의 길림성, 극동 러시아의 국경을 접하고 있는 두만강 일대를 초국경 경제개발이 최적지역으로 지목했다.

  러시아는 소련해체 이후 극동변방의 하산지대를 방치해 왔다. 그러나 2020년 12월 6일 개최된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 자문회의(의장국 한국)에서 하산관광클러스터 조성을 ‘서울선언’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본격적인 개발의지를 표출한 것이다. 이 지역은 지경학적·국제정치사적·한민족사적 관점에서 볼 때 천혜의 관광여건을 구비하고 있다. 지경학적으로는 초국경협력의 최적지이다. 국제정치사적으로는 소련군이 1938년 7~8월 13일간 하산전투에서 일본군의 도발을 무찌르고, 이어서 1939년 5~9월 중국·몽골 국경의 할힌골 전투에서도 승리함으로써 2차 대전의 승기를 잡았던 기념비적인 현장이다. 한민족사적으로는 한인 13가구가 1863년 최초로 두만강을 건너 치진허에 정착했고, 1882년경 연해주 인구 9만 명중 한인이 1만 명 이상을 차지했으며 일제 병탐기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다.

  그러나 하산지역의 인프라는 매우 열악하다. TSR/TKR을 연결하는 단선 철도는 막혀있고, 자동차 전용도로는 비포장 상태로 방치돼 있다. 항만도 그렇다. 특히 항공교통의 사각지대다. 저가항공사들이 이용할 수 있는 국제공항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유럽의 바젤공항이다. 프랑스·독일 간 역사적 갈등지대였던 그곳에 국제공항이 들어서면서 메트로폴리탄으로 거듭났다. 주변국간 긴장과 갈등의 역사적 트라우마로 인해 여전히 미개발지로 방치된 북·중·러 접경지역을 국제관광지로 개발해 안보 리스크를 줄이고 초국경 교류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주변국의 환상 고리 안에 갇혀있는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 내는 ‘차차선’(third best)의 실사구시적 통일방안이다. 지금이 적기이다.

 

 

 

※ 위 내용은 집필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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