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5.] 만성적인 북한의 식량문제: 그 본질과 정책적 시사점 - 박성열 숭실평화통일연구원 교수
- 22-10-1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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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적인 북한의 식량문제:
그 본질과 정책적 시사점
박성열 (숭실평화통일연구원 교수)
북한의 식량부족 문제가 다시 대두되고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 8월 30일 ‘2022년 작물생산과 식량 상황’ 보고서를 통해 북한을 16년 연속 식량 지원이 필요한 45개국에 포함하였다. 미 농무부는 북한의 올해 식량 부족량이 예년의 80만 톤 수준을 상회한 121만 톤 정도라고 예상하였다(VOA, 2022.9.17.). 대부분 전문가는 올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예년 수준보다 저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낮은 농업 생산성이라는 기저 요인에다1) 코로나19로 인한 대외 봉쇄와 내부의 사회적 이동 통제로 비료 등 농업 투입재 확보가 여의치 않았고 영농기 주민들의 활동이 위축되었으며 연례적인 자연재해(태풍과 홍수)까지 겹친 때문이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최근 식량 확보에 비상이 걸린 모습이다. 올해 9월 7일~8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총비서는 ‘국가알곡생산계획’을 무조건 수행하라고 독려하고 9월 27일에는 직접 황해남도에 농기계 5,500대를 보내 적기에 농업 수확할 것을 강조하는가 하면 10월 6일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결정으로 식량 유통 비리를 차단하는 ‘수매법’을 새로 제정하였다고 밝히고 있다2). 또한 외신에 따르면 북한은 2020년 1월 코로나19 발생 이후 국경을 폐쇄하고 외부 지원을 일절 거부하여 왔으나, 지난 8월 인도와 캐나다 등 민간단체와 베트남에 이례적으로 식량 지원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식량 사정은 과연 어떤 정도일까? 1990년대 중반 수많은 주민들이 굶어 죽었던 ‘고난의 행군’같은3) 비극이 되풀이될 정도로 심각한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먼저 사실관계를 정확히 진단한 후, 우리 정부의 정책적 방향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먼저 북한의 식량 사정을 보기 위해서는 국내 생산과 외부 도입을 합한 식량 가용량(availability) 개념을 활용해야 한다. 북한의 최근 6년 식량 생산량은 2016년(482만 톤), 2017년(470만 톤), 2018년(459만 톤), 2019년(464만 톤), 2020년(439만 톤), 2021년(469만 톤)으로서 439만 톤~482만 톤 사이의 생산량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외부 도입은 핵 개발에 따른 국제 제재 강화(2016년 이후)와 코로나19 봉쇄 영향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식량 도입의 주요 창구인 중국으로부터의 식량 수입액이 2020년(1억 5,000만 달러)에 비해 2021년(3,700만 달러)으로 대폭 줄었으며, 2020년도 대중국 수입이 전년에 비해 –75.2%를 보였다4). 이는 최근 북한 내 식량 가용량(공급)이 내부 생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통상 식량 생산량에서 종자용, 동물 사료용, 운반과 저장 과정 손실분 100만 톤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를 가용량에 포함하므로 2016년~2021년 기간 중 식량 생산량만 놓고 보면 339만 톤~382만 톤 정도를 가용량으로 볼 수 있다. FAO의 기준(연간 1인당 175kg)에 따라 북한의 인구(2021년 2,548만 명)에 필요한 연간 식량 소요량은 446만 톤 정도가 되므로 지난 6년간 북한의 식량 부족분은 64만 톤에서 107만 톤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북한의 식량 사정은 제2의 고난의 행군을 발생시킬 정도인가? 식량부족이 주민들이 굶어 죽는 기근 사태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식량 기근을 설명하는 이론은 두 가지가 있다. 식량가용량 감소(Food Availability Decline, FAD)와 식량획득력 감소(Food Entitlement Decline, FED)이다. FAD는 공급되는 식량의 총량으로 접근하며 이는 국내 생산+외부 도입으로 구성되나, 한 국가의 특정 지역이나 특정 계층에서 발생한 기아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를 갖는다. FED는 식량 기근의 원인을 식량 생산량보다 개인이 식량을 획득할 수 있는 권리 측면에서 접근한다. 이는 한 국가의 특정 지역에서 식량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혹은 그 나라의 다른 지역에서 식량을 구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문제는 식량을 분배하는 시스템과 시장에서의 식량 교환 권리(entitlement)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5). FED 관점은 식량부족이 기근 원인의 전부라고 간주하지 않으며, 오히려 국가의 배급 시스템과 시장교환으로 식량을 구할 수 있는 획득권리 보장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6) 당시 기근은 식량 생산 부족이라는 가용량 요인보다 식량 획득력 확보 실패가 원인임을 제시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특권층과 충성층, 평양 위주 선별적 배급체제를 작동한 가운데, 일반 주민 대상 배급이 단계적으로 중단되어 희생이 컸으며, 농민 시장 등을 통한 ‘식량 교환 획득력’이 공급 감소와 물가 폭등, 사회적 이동 제한으로 작동되지 못한 점이 기근의 주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식량 생산량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나, 외부 지원 규모가 상당해 배급제도와 장마당에서의 ‘교환 획득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대기근을 막거나 최소화할 수도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논의를 최근 북한의 식량 위기론에 적용하면, 국가배급체계와 시장에서의 식량 교환 획득력이 작동할 경우 식량 가용량이 부족하더라도 1990년대 고난의 행군과 같은 대기근이 초래되지는 않을 수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먼저, 최근의 북한은 1990년대와 다르게 국가기관과 기업소, 공장 및 협동농장, 국영농장 대상 공적 분배체계가 가동되고 있다. 이는 과거처럼 전면적인 국가배급은 아니더라도 제한적이나마 당, 국가기관 종사자에 배급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기업소와 공장은 자체 수익으로 노동자를 먹여 살리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협동농장과 국영농장은 수익을 국가와 농민에 나누는 방식으로 개인에 식량을 공급한다. 특히 시장에서의 식량 교환 획득체계 작동이 주민들의 식량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 전역에 산재한 시장(400개 이상)은 이미 식량의 공급과 수요가 작동하는 유통체계로 자리 잡아 전체적인 식량부족을 보완하는 메커니즘으로 기능을 하고 있다. 결국 최근의 북한 식량 위기론은 가용량 감소에서 비롯되어 당분간 지속될 것이나, 공적 분배체계와 시장에서의 식량 교환 획득력, 그리고 북한 당국이 주민 불만을 의식해 식량 확보를 역점적으로 나서고 있어 1990년처럼 대기근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로서는 북한의 식량 위기가 체제 내 왜곡된 자원배분에서 오는 구조적 요인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식량이 북한 주민들의 생존, 인권을 보장하는 핵심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와 협조해 인도적 차원의 식량 지원을 검토함이 바람직하다. 이는 정치적·이념적 차원을 넘어 보편적 인류애 측면에서 명분이 있을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7). 중장기적으로는 지자체와 민간단체, 국제기구 및 NGO 등이 연계한 다양한 거버넌스를 통해 북한의 농업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작물 품종 개량, 자연재해 대응 등 전문성을 활용한 지원에 나서고, 점진적으로 북한의 시장 및 경제적 제도개선 자문 등에 나서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1) 북한은 농업 부문 잉여를 중공업과 군수공업에 재투자하고 수령경제에 자원을 집중함으로써 농업 생산성이 하락하여 왔고, 뒤늦게 농민의 영농의욕 자극을 위해 분조 관리제·포전담당제 등 개혁 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으나 한계를 보이고 있다.
2) 북한의 지도자(김일성-김정일-김정은)들은 모두 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인민대중제일주의, 애민주의를 표방해 오면서도 식량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3) ‘고난의 행군’은 1995~1997년간 자연재해와 배급체계 붕괴로 많은 주민들이 사망(북한 당국 35만 - NGO 250만 추정)한 사건을 일컫는 것으로 북한 당국이 일제 강점기 어려운 시기를 간고한 투쟁으로 극복하였음을 부각하기 위해 만든 용어이다.
4) 본 글에 제시된 통계는 통계청의 북한통계 포털과 한국무역협회의 북한통계(K-stat)를 인용하였다.
5) Amartya Sen은 벵갈지역(1943)과 에티오피아(1973-1975),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1970년대 초), 방글라데시(1974) 기근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공급 문제가 발생하지 않음에도 식량난과 기근이 발생하는 사례가 많이 있음을 제시하고 주민들이 식량을 획득할 수 있는 권리, 즉 entitlement(획득력) 관점이 중요함을 주장하였다(Poverty and Famines-An essay on Entitlement and Deprivation, Clarendon press, Oxford University, 1981, pp. 45~51).
6) 정광민, 『북한 기근의 정치경제학: 수령경제·자력갱생·기근』, 시대정신, 2005.
7) 북한 식량난 심화시 영유아, 노인층 등 취약층이 주로 희생될 가능성이 크고, 과거 동서독 간 꾸준한 비정치적(경제·사회·문화 등) 교류가 독일 통일의 자양분이 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위 내용은 집필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