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3.] 사회주의 사회복지의 몇 가지 특성에 관하여- 이상은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 23-11-0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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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사회복지의 몇 가지 특성에 관하여
이상은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사회주의 혁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야심찬 사회개혁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채 100년을 버티지 못하고 붕괴되었다. 1980년대 후반 소련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정책(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의 물결과 함께 사회주의 체제는 급격하게 흔들렸고 결국 자본주의로의 체제전환의 길로 들어섰다. 1990년,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라는 거대한 시대적 변화를 경험했던 그 해에 필자는 석사과정 학생으로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 미지의 사회주의 국가들의 변화에 관심을 가졌었다. 동서독 통합과 함께 남북한 통합에 대한 기대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었다. 이제 그때로부터 30여년이 지났다. 하지만 곧 끝날 것 같던 사회주의 체제는 아직도 종식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라는 모호한 체제로 그리고 북한은 여전히 전체주의적 사회주의 국가로 남아있다. 실질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적 성격이 사라지고 껍데기만 사회주의로 남아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아직 이들이 사회주의 국가로서 잔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시점에 본고에서는 사회주의 사회복지의 성격에 대해 다시금 정리하고 평가해 보고자 한다. 사회주의 사회복지의 특성에 대한 이해는 북한 사회복지와 향후 남북한 사회복지 통합을 고려함에 있어서 기초적 관점을 제공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자원분배에 대해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제시했다. 사회주의가 고도로 성숙한 단계에서는 욕구에 따른 분배가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의 낮은 수준의 사회주의 단계에서는 노동에 따른 분배가 중심이 될 것이라고 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대부분 후진적 농업국가들로 출발하여 고도로 성숙한 사회주의 단계로까지 진입하지 못했다. 대부분 후발국으로서 일정한 산업화 과정을 거친 후 붕괴되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자원배분은 노동에 따른 분배원칙이 중심이었고, 집합적 소비의 차원에서 사회복지가 결합되는 형태였다.
그렇다면 현실적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사회복지는 어떠한 특성을 가졌을까? 아래에서는 이를 네가지 측면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첫째,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복지는 국가복지 또는 생산집단복지(기업 및 집단농장)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국가관료체계가 보다 발달한 곳에서는 복지가 국가복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국가관료체계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곳에서는 복지가 기업 또는 집단농장을 중심으로 생산집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민간 자선단체나 종교기관들에 의한 민간 복지가 발달한데 비해,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민간의 자원복지가 발달하지 못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소득격차가 커서 거대한 소득과 재산을 가진 부유층들에 의한 자선활동의 여지가 많다. 또한 종교와 결사의 자유로 인해 민간자선단체의 형성이 자유롭고 활발하여 자선활동이 활성화된다. 이에 비해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소득격차가 적고 종교와 결사의 자유가 없어 민간 자선단체가 설립되기 어려웠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소련과 같이 국가관료체계가 발달한 경우 국가복지가 중심이 되었지만, 중국, 특히 문화혁명 시기의 중국과 같이 국가 관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에는 국가에 의한 체계적인 사회복지의 공급과 관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사회복지 기능이 생산단위인 기업과 집단농장에 의해 이루어졌다.
둘째,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완전고용에 기반하여 그 위에서 사회복지체계가 구축되었다.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완전고용을 추구하였지만 재정 및 통화 정책을 통한 경기부양 노력이 중심이었고 현실적으로는 실업이 만연했기 때문에 실업보장 정책들이 발달하였다. 이에 비해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국가계획에 의해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사회주의 국가들에서의 완전고용은 인위적으로 유지된 것으로서, 기업내에서 별다른 역할없이 불필요하게 존재하는 피고용인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이 체제 붕괴 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찌되었던 형식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완전고용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규모 실업에 대응하는 실업보장정책이나 빈곤에 대응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들이 발달하지 못했다. 1990년대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전환이후 낙후된 기업들의 폐쇄와 기업내에서의 유휴인력들의 구조조정에 따라 대규모 실업과 빈곤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이들 국가에서 실업보험제도나 빈곤제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에 대응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사회주의 국가들은 완전고용에 기반하였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노동경력 즉 보험가입 기간이 매우 길었다. 동서독 통합에 있어서 서독의 공적연금제도를 동독에도 적용하는 방식으로 공적연금 통합이 이루어졌다. 동독의 경우 중고령층들은 서독에 비해 노동경력이 매우 길었는데 이를 모두 가입기간으로 인정받았다. 서독의 공적연금은 급여수준이 높았는데, 동독 중고령층들은 이전의 긴 노동경력에 서독의 높은 연금급여수준을 적용받은 결과 매우 관대한 연금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동독 주민들에 대한 관대한 연금 급여의 적용은 한편에서는 통일과정에서 발생되는 갈등을 줄이고 통합을 증진시키는 기능을 수행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독일 통일에 있어서 큰 통일비용을 야기하기도 했다.
셋째, 사회주의국가들에서는 남녀 모두에 대해 노동자로서 사회주의 사회건설에의 참여를 강조했다. 여성들도 노동자로서 고용되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보육서비스 등의 사회적 양육 체계가 발달했다. 독일의 경우에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사회적 양육과 육아휴직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는데, 여기에는 과거 동독에서의 사회적 양육체계에 대한 경험이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독일에서 사회적 양육체계의 발전에는 메르켈 기민당 정부의 기여가 컸다. 기민당은 원래 전통적으로 가족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적 이념에 기반한 정당인데, 동독 출신인 메르켈 총리의 가족정책에 대한 강조가 기민당 정부 하에서도 독일 사회적 양육체계가 발달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넷째, 사회주의 국가의 복지는 전체주의적 복지의 성격을 가졌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복지는 한편에서는 사회통제의 기능을 다른 한편에서는 체제 정당성 확보의 기능을 수행했다. 우선 사회주의 국가에서 복지는 개인적 권리로서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와 국가에의 순응을 조건으로 제공되었다. 예를 들어 체제 반항자들은 고용이나 주거 등의 복지를 박탈당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복지가 공민권과 정치권의 기반 위에서 개인의 사회적 권리로서 구축된 반면,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공민권과 정치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체제 및 국가에의 순응이라는 조건 위에서 복지가 공급되었다. 다른 한편 사회주의 국가에서 복지는 체제 정당화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집합적 복지 공급에 따른 보장성과 평등성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사회주의 체제와 국가를 지지하게 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래서 사회주의 국가에서 집합적 복지공급은 시장체제의 도입을 주장하는 세력에 대응하여 공산당 지도부와 노동자들이 결합하여 전체주의적 사회주의 국가를 유지하게 하는 주요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 위 내용은 집필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