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5] 북한 노동당 제8기 제11차 전원회의 분석과 2025년 전망- 숭실대 숭실평화통일연구원 최선경 교수
- 25-01-1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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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 제8기 제11차 전원회의 분석과 2025년 전망
최선경 (숭실대 숭실평화통일연구원 교수)
북한의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해당연도 사업을 결산하고 내년 국정운영 방향과 사업을 계획하는 자리이다. 2024년 12월 23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 제8기 제11차 전원회의는 예년보다 3일 정도 앞당겨 개최되었으며, 통상 전원회의 종료일 다음 날 관련 기사가 나온 것과 달리, 이번 회의는 회의 종료 이틀 뒤인 12월 29일 보도되었다. 회의 개최 보도나 중간 보도를 내지 않고 종합 보도를 통해 회의 개최 시기와 내용을 일괄적으로 보도한 것 또한 이례적이다.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 등 수위가 높았던 2023년 전원회의의 대남 메시지에 비해, 올해는 ‘미국의 반공 전초기지’라는 비난이 전부였다. 한국의 국내 정치 변화와 미국의 새 행정부 출범 등 불확실성이 커진 대외 상황을 관망하며 상황을 관리하는 모양새이다.
‘2025년’의 의미
이러한 북한의 ‘숨 고르기’ 배경에는 2025년의 ‘의미’가 존재한다. 전원회의 보도는 ‘2025년’은 정치적으로 당중앙위원회 제8기의 ‘마지막 해’이자, 경제적으로는 제8차 당대회에서 발표된 5개년계획의 ‘마지막 해’이라는 점을 짚었다. 다시 말해 2025년은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계획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2026년 예정된 제9차 당대회를 준비하는 한 해가 될 것을 의미한다. 보도 말미에는 “전당, 전국, 전민이 총분기하여 기적적 성과를 쟁취”해 9차 당대회를 “승리자들의 대회, 영광의 대회로 떳떳하게 맞이”할 것을 호소했다.
제9차 당대회 개최에 앞서, 10월에는 당 창건 80주년이라는 이벤트도 기다리고 있다. 1월 4일 자 노동신문 1면 사설에서는 당 창건 80주년과 9차 당대회를 함께 언급하며, 올해를 ‘위대한 승리와 영광’의 해로 맞이할 것을 주문했다. 여기서 국가 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여, 당 창건 80주년·9차 당 대회를 ‘승리와 영광’으로 빛낼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북한 당국은 올해 5개년계획의 완수를 위한 총력전을 지속하면서, 내년 9차 당대회에서는 분야별 성과를 과시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전원회의는 2025년 예고된 화려한 피날레와 다음 단계 진입을 앞두고, 승리의 분위기와 환경 조성을 위해 전열을 정비하는 시간이었다.
2024년 주요 성과들
북한은 2024년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북한은 “시련 속에서도 확대장성된 성과로 가득찬” 변혁과 도약의 해였다고 자찬했다. 주목할 것은 일부의 ‘결점들’을 찾아 해결책을 도출하고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부정적 요소’ 극복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할 것을 촉구했다는 것이다. 재해방지 능력, 건설사업, 당 검사위원회, 그리고 교육 영역에서 문제점들이 차례로 지적되었다. 특히 각급 당 검사 위원들에서 발현된 ‘편향적 문제들’을 ‘엄정하게 지적’할 것에 대한 언급은 당의 기층 조직을 정비하고 규율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2024년 성과가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그 과(過)를 각급 당 조직에 돌리면서 당내 기강과 감독을 강화하는 조치로 볼 수 있다.
정치·군사 부문에서는 자주권 수호와 사회주의 발전을 확고히 담보했으며, 전략적 억제력을 강화하고, 과학기술의 현대화 등을 통해 ‘무시할 수 없는 국제적 지위’를 드러냈다고 자찬했다. 전년도에는 미사일 (시험) 발사, 무인기, 잠수함, 정찰위성 등 핵 능력 고도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데 반해, 2024년 국방 부문의 구체적 성과, 즉 핵 무력 고도화, 러북/북러 간 협력 및 밀착은 생략했다.
이어 경제 부문에서는 ‘12개 중요 고지’1)에서 100% 이상의 달성률을 제시했다.2) 전년도 전원회의에서는 ‘12개 중요 고지’ 외 베어링, 변압기, 전동기의 증산도 거론되었지만, 올해는 이렇다 할 만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해당 부문의 언급할 만한 성과가 없었거나, 군수생산 품목의 보안 유지를 위해 함구했을 가능성이 있다. 과학 분야에서는 경제 부문에서 생산력을 높이고 인민 생활 향상에 절실한 과학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진일보’가 이루어졌다는 간략한 언급이 있었다. 정찰위성을 위시해 우주과학 기술 부문의 성과로 꼽았던 전년도와 비교하면, 과학기술의 역할은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으로 내려왔다.
2025년 정책 과제
앞서 언급했듯, 2025년은 5개년 계획을 ‘성과적으로 완결’한 후 ‘다음 단계의 발전 노정’ 진입을 준비하는 해이다. 북한 당국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다소 절제된 대외 메시지를 발신한데 반해, ‘지방 발전’과 ‘교육토대’를 별도 의제로 두어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준엄한 지역 정세’와 ‘유동적인 국제관계 구도 변화’를 고려해 대외·대남 메시지는 줄이고, 대내 메시지에 힘을 실은 것이다. 다음 경제발전 단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8차 당대회 계획을 순조롭게 이행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한다. 2025년 기간 공업 목표, 평양과 농촌 살림집 건설, 재해방지와 농업 생산량 달성, 경공업 부문의 질 제고 등 부문별 목표를 제시하며, 인민 생활에 실제적인 변화를 이룰 것을 강조했다. 8차 당대회 및 5개년 계획 ‘마지막 해’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과학계의 총 분기와 보건 및 문화 부문의 분위기 조성을 주문하기도 했다.
대외 메시지에서는 ‘자주 세력권’과 ‘패권 세력권’을 대비시키며 자주 세력권의 장성과 약진이 두드러지고 패권 세력권의 입지가 급격히 약화 및 쇠퇴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대외 사업에서 국익 증대와 국위 선양 차원의 전략적 의의가 있는 성과를 이룩했으며, 이를 통해 '정의로운 다극세계 건설'을 견인하는 등 북한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음을 강조했다. 또한 주권과 국익을 존중하는 ‘친선적이고 우호적인 나라들’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발전시킬 것을 밝혔다. 이 문구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 체결, 러북/북러 간 고위급 대표단 교환,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아우르는 러북/북러 밀착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2024년 상반기 북중 무역액이 전년 대비 감소하는 등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2025년 양국 간 연대는 군사 협력을 중심으로 보다 다각화될 것으로 전망된다.3)
미국에 대해서는 ‘가장 반동적인 국가적 실체’이며, 한미일 동맹의 핵 군사 블록화가 ‘침략적으로 팽창’하고 있다며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위협을 강조했다. 이어 대한민국이 미국의 ‘철저한 반공 전초기지로 전락’했다고 비하했고, ‘최강경 대미 대응 전략’을 천명했다. 그러나 ‘강 대 강 정면승부’의 투쟁 원칙을 견지하는 대미 초강경 노선과 ‘적대적인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한 대남 노선을 천명한 전년도보다 메시지의 수위를 조절했다.4) 올해 1월 20일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한국의 정치적 상황 변화를 주시하는 가운데 공세적 표현은 자제하고 운신의 폭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별도 의정으로 ‘지방 발전 정책’과 ‘교육토대 강화’를 제시해 내치에 집중했다.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제시한 《지방 발전 20×10》을 당의 ‘최대 숙원사업’이자, ‘최우선 혁명 과업’으로 놓았다. 나라의 모든 지역의 동시·균형 발전을 목표로 한 이 정책은 10년에 걸쳐 매년 20개 군에 지방공업공장을 건설해, 모든 시·군에 물질문화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지방발전 정책은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등장한 ‘우리식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 즉 지역 간 균형발전론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 대북제재 장기화로 기간산업 중심의 경제 성장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경제 부문인 건설에 집중하여 인위적인 내수 활성화를 꾀하는 것이다. 동시에 지방건설은 ‘인민대중제일주의’와 ‘애민정치’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는 부문이기도 하다.
지방경제 활성화를 통해 내부 결속을 강화하려면, 주택과 산업 인프라 건설을 비롯해 지역의 미래 먹거리 산업을 통한 주민의 가계 소득이 증가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포시 바다가 양식사업소’는 지역의 환경과 특색 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본보기 기지로 소개되었다. 또한 전국 시·군들에 △ 보건시설, △ 복합형 문화 중심(과학교육 및 생활문화 시설), △ 양곡 관리시설을 ‘3대 필수 대상건설’로 추가했다. 지방건설 대상을 확대해 중앙-지방 격차를 해소해 지방 민심을 달래고 내부 결속을 강화하겠다는 의도이다. 지방발전의 성과는 당 창건 80주년·9차 당 대회에서 김정은 체제의 치적으로 선전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별도 의정인 ‘교육토대 강화’는 우선 과제로 제출되었다. 교육토대 현대화는 △ 학용품, 교구비품, 교육기자재 문제 해결, △ 학교 개건 및 현대화, △ 의무 교육 부문의 기초교육 질 제고, △ 교육자 질 제고, △ 도시-농촌 간 교육수준 차이 완화, △ 장애인 교육 지원 체계를 수립하는 과업으로 구체화되었다. 향후 10년간 전국의 학교들을 일신한다는 세부 목표는 ‘교육 진흥’이 곧 ‘국가 부흥’, ‘지방 부흥’, ‘농촌 진흥’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큰 틀에서 교육 격차 해소는 중앙-지방의 격차를 줄이고 지방의 동시·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지방 건설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끝으로, 이번 전원회의는 내각 총리를 김덕훈에서 박태성으로 4년만에 교체한 것을 비롯해 외교, 군사 부문을 중심으로 인사를 단행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군부 출신인 김정관 국방성 제1부장이 경제 정책의 실무를 담당하는 내각 부총리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군 출신 인사가 내각 부총리에 오른 것은 이례적으로, 이는 지방발전 정책 등 이미 경제건설 현장에 투입되어 있는 군인 건설자들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러북/북러 관련 인사가 대거 승진한 것은 군사, 에너지, 과학기술, 경제, 교육, 보건 등 전방위에 걸친 밀착이 한층 강화될 것을 예고한다.
1) 북한의 ‘12개 중요 고지’는 알곡, 전력, 석탄, 압연강재, 유색금속, 질소비료, 시멘트, 통나무, 천, 수산물, 살림집, 철도화물 수송이다.
2) 살림집 달성률은 생략되었지만, 화성(평양) 1만 세대, 검덕(함남) 지구와 농촌 살림집 건설을 따로 언급하기도 했다.
3) 2024년 북한은 재래식 무기를 러시아에 제공하고 러시아로부터 군사기술을 제공받는 것에서 나아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북한군을 파병했다. 그 대가로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핵추진 잠수함, ICBM 재진입, 정찰 위성 발사 등에 필요한 첨단 군사기술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석유, 밀가루, 옥수수 등 에너지와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중국이 비료 수출을 제한하는 상황에서 러시아로부터 비료를 수입할 수 있다.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파견, 북한 의료 인력의 러시아 의료기관 연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가 예상된다. 하지만 대규모 사상자 발생으로 인한 내부 민심 동요, 공동 패전이 초래할 리더십 손상 등 사회적·정치적 리스크도 존재한다.
4) 표현면에서도 2023년 전원회의에서 ‘미국놈들’의 핵협의 그룹 신설, ‘미군부깡패들’의 한미일 합동군사연습을 비난하고, ‘전쟁준비 준비 완성’ 과업을 언급했던 과격한 어조는 다소 누그러졌다.
※ 위 내용은 집필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